투자, 특히 그 대상이 사물일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사람일 때도 가장 이상적인 결과는 윈윈이다. 나도 그를 통해 내가 없는 그 무엇을 얻고 그 또한 나를 통해 그가 없는 그 무엇을 얻어야 한다.
이것이 합작이 성공하는 절대 관건이다.
물론 많은 경우 저 관계는 여러 이유로 이내 흐지부지하거나 심지어 원수로 돌변해서 파탄나고야 만다.
내가 뭐 거창하게 사람을 투자한 적 있던가 자문하곤 하는데 안 해본 건 아니라고 하고 싶다.
이건 일전에 한 말인데 개중 그런 대로 잘 풀리는 사례가 없지는 않으니 이 경우 거의 예외없이 나중에 잘 되서서는 지가 잘 나서 그리된 줄 알더라.
물론 이건 내 기준이고 내가 투자한다 생각한 저쪽에선 얼마든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건 안다.
내가 무에 거창한 인재 투자를 하겠는가? 내 수준에서는 저짝에 무명으로 뒹구는 친구들 중 싹수가 있다 판단한 몇몇을 내가 생각하는 방식으로 등단케 하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들은 너무 거창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았으면 한다.
나는 첫째 싹수를 보고 둘째 절박을 보며 셋째 분노를 본다.
싹수란 잠재성 혹은 전문성 혹은 실력을 말하는데 과연 저 친구가 해당 분야를 주름잡을 자질 혹은 실력을 말한다. 물론 오판하는 일도 적지 않다.
그 다음이 절박인데 현재의 무명을 벗어나려는 욕망이 있는가를 본다. 이 욕망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안 된다.
요새 유행하는 말로 예를 들자면 관종인데, 나는 매양 그런 말을 한다. 인간은 오직 두 부류가 있다. 이미 관종인 사람과 관종을 준비하는 사람 딱 두 성향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모든 인간은 관종으로 태어난다고 본다.
문젠 이 관종이 발현하는 방식이다. 내가 보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시종일관 힘들다 징징거리거나 아니면 매양 지 얼굴이나 팔면서 싸구려 동정심이나 유발하는 방식으로 관종을 소비한다.
이 일상의 관종은 실은 패배주의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나는 셋째 분노를 끌어내려 한다. 이른바 성공이 무엇을 기준으로 할 것인지는 논란이 있겠지만 내가 투자하려는 사람들한테 매양 묻는 말이 너 이대로 살래? 다.
이대로 만족한듯 살다 뒤질래 물으면서 분노를 이끌어내려 한다.
나로선 현실에 안주하려는데 대한 유혹을 처단하고자 함인데 실은 이는 프로이드가 구사한 방법을 원용한 것이다.
프로이드는 언제나 충격요법을 쓴다. 그 충격은 내가 이해하기로는 현실에 대한 일깨움이고 떨쳐일어남에의 욕구 만들기다.
물론 이런 과정에서 적지 않은 문제가 발생한다.
그래도 여전히 하나만은 유효하다 보는데 그래서 나는 지금도 묻는다.
이대로 살다 뒤질래? 억울하지도 않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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