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곤충 덕후가 잠깐하다 말 줄 알았다.
한데 증세가 더욱 심해져 이젠 어찌할 수가 없다.
그만 하라 말린 적은 없다.
군대까지 갔다와서 예비군에 편입된 놈이 어찌하다 아주 용케도(실은 지 엄마 덕분이다만) 대학 학과도 무슨 곤충학 관련으로 기어들어가서는 점점 더 증세가 심해져서는 새벽마다 메뚜기니 뭐니 하며 찾아서 중랑천으로 기어가서는 땀을 뻘뻘 흘리며 돌아와서는
그 채집한 곤충이 뭐가 그리 좋은 지 애비 서재로 와서는 이게 뭐다 이게 짝짓기하는 거다 알 낳는 거다 블라블라하면서는 내가 그래? 하고 영혼없는 대답을 하면 이건 찍어서 유튜브 안 올리냐 한다.
그래 가끔씩 유튜브에 오르는 그런 영상들은 압력에 굴한 것이라 말해둔다.
어제는 양평곤충박물관이라는 데를 데리고 갔다.
이 놈은 현장 체질이라 박물관 성향은 아닌 줄 알았더니 그래서 건성건성 돌아보는 게 아닌가 했더니
집에 들어와 지 엄마랑 나누는 대화를 엿들으니 뿔싸 다 보고 다 그에 대한 생각이 있어 블라블라하는데
그런 모습 물끄러미 바라볼 때마다 지 애비가 왜 속이 터지지 않겠는가?
저런 놈을 두고 매양 하는 말이
다 좋다. 너가 곤충에 미쳐날뛰는 것도 다 좋은데 니 애비 곧 퇴직이라 너가 원한다면 아직 상속 못한 할아버지 작은 논땡이 할머니 삼촌도 너한테 준다 하고 나도 반대가 없으니 너가 가져가서 곤충농사 짓든 뭐든 해라
너도 이젠 군대까지 갔다 왔고 언제까지 마냥 내가 좋은 것만 나만 좋은 것만 즐길 때는 아닌 거 같다.
먹고 살아야 할 거 아니냐? 밥벌이로 연결해얄 거 아니냐? 하다 못해 유튜브라도 시작해야는 거 아니냐?
콘텐츠를 개발해라. 콘텐츠다. 아버지는 그걸 모른다. 안다 해도 그건 다 구닥다리 아니겠냐?
저 장수하늘소 보이지? 저게 십년전에 표본이 마리당 일억원이었고 지금은 이억이 넘어갈 거고 두 마리면 오억이 갈 거다.
너가 곤충으로 떼부자 되면 좋겠지만 곤충으로 먹고 사는 길은 너가 개척해야 한다. 이제 내 시댄 끝났다. 내가 도울수 있는건 도우마.
다시 말하는데 내가 좋아 내가 미쳐 하는 데서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
줄곧 이런 말로 스트레스를 주긴 하는데 천성이 만만디라 듣고는 흘려버리리라 본다.
돌이켜 보면 내가 내세울 만한 콘텐츠가 누구라고 왜 없겠는가?
그것이 생계라는 이름으로 눌러 살 수밖에 없으리라.
당장 입에 풀칠은 해야하는 절박성, 또 그런 절박성이 내면화하면서 이젠 내 꿈이 무엇이었는지도 잃어버린 채 하루하루 주어진 삶을 꾸역꾸역 이고 가는 게 아닐까 싶다.
하긴 그러고 보면 나 힘들어요 하며 매일매일 징징거리는 사람들이야말로 어쩌면 그것을 탈출하고 싶다는 아우성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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