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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징비록懲毖錄, 통절한 반성을 표방했지만 그 어디에서도 회개는 없는 희유한 책

by taeshik.kim 2023.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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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들이 떠돌고 정치가 어지러워진 때를 만나 나처럼 못난 사람이 나라의 중책을 맡아 위기를 바로잡지 못하고 무너짐을 떠받치지 못했으니 그 죄는 죽어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로대 그럼에도 외려 시골에 눈끄고 살면서 구차하게 삶을 이어가고 있으니 어찌 나라의 관대한 은혜가 아니겠는가? 근심과 두려움이 조금 진정되어 지난 일을 생각할 때마다 황송하고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으니 이에 한가한 때에 임진년에서 무술년(1598)에 이르는 사이에 보고 들은 일을 대강 적어 모으니....어리석은 신하가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려 했지만 공을 세우지 못한 죄를 드러내고자 했다."

 

류성룡柳成龍(1542~1607)은 징비록 서문에서 이렇게 적었으니, 이를 보면 자신의 지난날 잘못이 많았음을 참회하는 심정으로 점철한 책인 듯하다. 

하지만 그의 참회는 서문에 보이는 꼴랑 이것뿐이었으니, 징비록 본문 어디를 봐도, 그가 지은 죽을 죄가 무엇인지 단 한마디도 논급이 없고, 오직 나는 잘했는데, 혹은 나는 잘하려 했는데 정적들이 다 망쳤다는 비난 뿐이다. 

이순신 혹은 명나라 구원병이 아니었으면 나라가 망했을 것이라며, 그것은 오직 내가 힘써서 된 것이라는 자기자랑 말고는 자기 잘못은 적은 대목은 단 한 군데도 없다. 



따라서 징비록은 실상 과오 회개와는 눈꼽만큼도 관계없고 오직 자기 치적 자랑이며, 반대파 씹어돌리기로 점철한다.

자기 과오 고백을 표방했지만, 그 어디에도 자기 과오는 고백이 없는 희유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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