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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브론테 세 자매 초상화 Portrait of Brontë Sisters

by taeshik.kim 2021. 5.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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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다. 인근 국립중앙박물관이 마침 영국 런던에 소재하는 National Portrait Gallery 명품전을 한다기에 지인과 더불어 현장을 둘러봤으니, ‘시대의 얼굴, 셰익스피어에서 에드 시런까지 ICONS AND IDENTITIES’를 표방한 이번 특별전은 살피니, 아무래도 친숙성 때문이겠지만 윌리엄 셰익스피어를 대문에 큼지막하게 박은 이번 전시품 중에는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제아무리 무늬만 그렇다 해도 한때는 영어영문학과에 적을 두고서 한때는 셰익스피어를 논하고, 《Wuthering Heights》를 읊조리던 사람으로서 반가운 얼굴이 더러 있었으니, 개중에도 유난히 눈길이 간 데가 Anne(1820-1849), Emily(1818~1848), 그리고 Charlotte(1816~1855) 세 Brontë 자매를 하나의 화면에 담은 초상이다.


이 얼굴들이 얼마나 실제를 반영하는지 모르겠지만, 소설로 그 위대하다는 Victorian era를 장식한 이들 Brontë가 이 초상을 보고는 왜 포샵을 하지 않았느냐 따졌을지 모르겠지만, 뛰어난 미모를 자랑한 이른바 아이돌형과는 거리가 멀거니와, 아무튼 설명에 의하면 화면을 바라보는 사람 기준으로 왼쪽에서부터 차례로 Anne·Emily·Charlotte이라 한다.

 

저네들 생몰연을 주시해 줄 것을 부탁드리거니와, 마흔 살을 넘긴 이가 없다. 그때가 제아무리 현대와는 의학 수준이 다른 때라는 점을 감안해도, 맡언니 샬럿이 서른아홉을 살았을 뿐이며, 그 동생들은 서른살에 가버렸다.


Oil on canvas인 저 초상은 저들의 남자 형제인 Patrick Branwell Brontë가 그렸다 하거니와, 저 초상 복판에서 감지되는 희미한 사람 그림자 비스무리한 것이 아마도 거울에 비친 화가 Patrick일 것으로 본다 한다. 그렇다면 저 그림은 네 형제자매를 한 군데다 담은 셈이다.

 

내친 김에 단명한 저들 자매에 견주어 저 그림을 그린 Patrick의 생몰년을 다른 데서 찾아 보충하건대 1817~1848년이라 하니, 이 친구 역시 불과 서른한살에 저승길로 사라지고 말았음을 본다. 단명하는 유전자를 지닌 집안이 아닌가 하거니와, 그것이 아니라면 몰살한 연대가 1848~49년에 집중하는 것으로 보아 혹 저 무렵과 요즘 지구를 암울하게 덮은 COVID-19 같은 전염병이 유행하지 않았는가 하는 상상도 해 본다.

 

 

저 자매는 각각 《Agnes Grey》, 《Wuthering Heights》, 《Jane Eyre》이라 해서 영문학에서는 나름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소설들을 남기거니와, 그 출판 시점이 모두 1847년이라 하니, 이런 동시 출간에 모종의 다른 힘이 작동하지 않았나 한다.


객설이 길었다. 저 초상은 Patrick이 1834년 무렵에 그렸다 하는데 그렇다면 맨 왼쪽 막대 Anne이 14살 때라는 얘긴데, 그러기에는 너무 조숙해 보이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아무튼 이 그림에 대한 전시장 설명을 추리면 이렇다.

19세기에는 여성 소설가로 활동하는 것에 제약이 있었기 때문에 (세 자매는 각각) 액턴 Acton, 엘리스 Ellis, 커러 벨 Currer Bell이라는 필명을 사용했다. 자매를 그린 그림 중 유일하게 남은 것이다. 자매의 남자 동기였던 브란웰이 화가를 꿈꾸던 17세 때 그렸다. 그림 뒤편에 희미하게 보이는 형상이 그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그림은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것으로 여겨졌다가 1914년 찬장에서 접힌 채로 발견되었다. 초상화미술관은 그림이 오랫동안 방치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접히고 물감이 떨어진 부분을 그대로 보존했다.

The portrait was thought to have been lost until it was discovered folded up on top of a cupboard in 1914. The barely discernible male figure in the middle is almost certainly a self-portrait of Branwell. Following the portrait's acquisition, the National Portrait Gallery made the highly unusual decision not to restore it, but to retain the fold marks and paint losses, evidence of the neglect it had suffered that has proved integral to the portrait's enduring appeal.

잡설이 너무 길어 미안하지만, 오늘 내가 논하고자 하는 저 장대한 주제와 관련해서 내가 착목하고 싶은 대목이 바로 이것이다.

“초상화미술관은 그림이 오랫동안 방치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접히고 물감이 떨어진 부분을 그대로 보존했다.”

바로 이 대목이 오늘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점을 압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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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 2021. 5. 28 원주역사박물관이 주최하고 문화유산연구소 길과 문헌과문물이 주관하는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 귀환 기념 학술세미나 '還歸本處'에서 행할 내 기조강연 '우리 안의 약탈문화재를 생각한다'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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