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보은군 속리산 입구 정이품송正二品松이 또 하나 팔을 잃었다. 보은군에 의하면, 서쪽 방향 지름 5㎝, 길이 4m 가량 되는 곁가지 하나가 또 하나 날아갔단다. 2021년 5월 3일 관련 신고가 접수되었다고 하니, 이 무렵 강풍에 의한 소행으로 본단다.
그 전날 속리산 일대에는 초속 7.7m의 강풍이 불렀고, 3일에도 초속 5.8m의 바람이 이어졌다고 하니, 이 정이품송이 전승 그대로, 조선 세조 때의 그것이라면, 그의 생몰년이 1417~1468년이라니, 그의 죽음을 기준으로 해도 물경 최소 550년을 돌파한 소나무가 현재도 살아있다는 사실이 더 놀랍기만 하다.
저 정이품송을 일러 흔히 ‘원추형 아름다운 자태’라 하지만, 지나치게 많은 나이, 그에 따른 생태 환경 변화 혹은 각종 자연현상은 언제나 그것을 고사 위기로 몰아간다.
내가 기억하는 일만 해도 태풍 하나 지나면 가지 몇 개가 부러졌다는 소식뿐이었으니, 하긴 그러고 보니 저것이 마침내 쓰려졌다는 소식을 내가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는 어리거나 젊은 시절 내가 희미하게 기억하는 일이기도 한데, 한때는 솔잎혹파리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팽배했던 때도 있었다. 실제 그런 일이 있었단다.
그 극심한 피해를 본 정이품송을 살리고자 10년 가까이나 방충망을 뒤집어씌우고 사력을 다한 결과 기적으로 살아났지만, 한 번 잃은 기력에 언제나 상채기만 덧씌우는 중이다.
1993년 2월에는 지름이 26㎝나 되는 동북쪽 큰 가지를 잃고, 5년 뒤에는 바로 옆 지름 20㎝짜리 가지가 말라 죽으면서 원추형 자태는 상당한 타격을 봤다.
2007년과 2010년에는 각각 돌풍으로 지름 20㎝ 안팎인 가지가 자끈동 부러졌는가 싶더니, 2012년 8월 한반도를 덮친 태풍 ‘볼라벤’에는 지름 18㎝ 서북쪽 가지 하나를 더 망실했다.
그 이듬해 다시 솔잎혹파리가 날아들면서 잎이 누렇게 말라 죽는 피해가 접수되기도 했다. 언제인지 모르지만, 그것이 당장 내일일지도 모르지만, 이제 우리는 장대한 장송식을 준비해야 한다.
언제까지 방충망 뒤집어 씌우고, 속이 빈 줄기를 보강하는 일로 살아있어 달라 애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비단 정이품송만이 아니라 이와 같은 기상재해에 문화재 중에서도 유난히 천연기념물 피해가 큰 것을 역사가 증명할 것이로대, 특히 노거수老巨樹가 많은 천연기념물은 태풍 하나 지난 자리에 저와 같은 일로 끝내 생명을 다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일이 많거니와, 그 사라짐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언제까지 그 생명을 부여잡고 있을 수는 없으니 그 사라짐을 자연의 순환이라 받아들인다.
그렇다, 생명이 다하면 사라지는 법이다. 이것이 비단 생물에만 해당하리오?
그 사라짐이 무생물이라 해서 예외가 아니거니와, 바위도 무너져 부서지거늘 유독 문화재에 대해서만은 그리하지 말아야 한다는 윽박이 곳곳에서 판치거니와, 이런 윽박이 당위로 자리잡은 데서 암초가 자라나기 마련이다.
문화재는 썩어서도 안 되고, 무너져서도 안 되며, 더구나 사라져서도 안 된다는 그 강박 윽박을 이제는 추방할 시점이다.
우리가 준비할 것은 방충제나 버팀목이 아니라, 장대한 레퀴엠이다. 늙어감과 사라짐이 지극히 당연한 자연의 법칙으로 자리 잡는 그날이 문화재가 바로서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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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 2021. 5. 28 원주역사박물관이 주최하고 문화유산연구소 길과 문헌과문물이 주관하는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 귀환 기념 학술세미나 '還歸本處'에서 행할 내 기조강연 '우리 안의 약탈문화재를 생각한다'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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