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왕비가 능원에 위치하는 까닭은 그곳이 바로 광개토왕을 필두로 하는 고구려 왕가의 유택이기 때문이다.
왕가의 뿌리에 대한 정당성과 그 뿌리의 보호 관리를 담은 내용이 비문에 들어간 이유다.
나아가 그런 까닭에 그런 선정성을 담은 광개토왕비는 결코 다른 곳에 들어설 수 없었던 것이다.
무령왕 부부 묘권墓券이 무령왕 부부능에서 발견된 까닭은 그곳이 다름 아닌 이들의 유택幽宅인 까닭이요 동시에 그것이 공산성 같은 데 들어설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남산신성비가 명활산성에 있을 수 없고, 반대로 명활산성비가 남산신성 성벽에 들어갈 수 없다.
이는 비가 어디에 입지하는가가 곧 그 비를 왜 세워야 했는지를 푸는 열쇠임을 의미한다.
아쇼카왕비는 그 도시에서 사람 내왕이 가장 많거나 관람성이 뛰어난 곳에 건립되었다. 왜냐면 그 텍스트는 누구나 신민이면 따라야 하는 법령이기 때문이다.
봉평비와 냉수리비는 입비 장소를 찾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비가 어디에 들어섰을지는 안다.
사람 내왕이 가장 많은 동네 어귀나 마을 광장 혹은 관공서 앞문에 들어섰다.
왜?
그 내용은 그 동네 주민이면 누구나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북한산 비봉비와 감악산비를 필두로 하는 소위 진흥왕 순수비가 왜 하고 많은 데 중 험준한 산꼭대기에 섰는지도 자연 그 입지 조건에서 입비 목적을 찾아야 한다. 이 입지 조건을 묻지 않는 그 어떤 순수비 연구도 그 목적을 해명할 수 없다.
그것이 봉선의 기념비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어떤 경우에도 비봉을 올라보지 않고, 감악산을 올라보지 않고 그 비문만 매달리는 분석은 사상누각이다.
마운령비는 내 기억에 해발 육백미터, 황초령비는 해발 천백 고지에 입지한다.
근 십여년간 진흥왕 순수비에 대한 논문이 느닷없이 십여편이나 쏟아졌는데 개중 그 어떤 것도 이 입지조건의 심각성을 주목한 이가 없다. (2017.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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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비성은 그 텍스트 목적을 해명하는 일이다. 이 기념비성을 해체하기 위해서는 누가 왜 거기에를 묻는 데서 시작한다. 텍스트의 기념비성이라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 이를 해명하는 데서 기존 논의에서 누락한 것들을 보완하거나 창안한다. 내가 텍스트를 대하는 자세에서 늘 잊지 않으려 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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