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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안태安胎문화, 그 그랜드디자인은 어찌 짤 것인가?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3.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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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安胎는 장태藏胎라고도 하며, 아이가 태어났을 때 그 탯줄을 봉안하는 방식 일체와 그것을 둘러싼 사회관습, 관념 일체를 일컬어 안태문화 혹은 장태문화로 카테고리라이제이션할 수 있을 것이니, 

이 안태문화는 그것을 땅에다가 매장한다는 점에서 실상은 동시대 시체 매장과 궤를 같이한다. 그런 까닭에 이 안태문화가 전개하는 양상을 보면 동시대 시체매장문화재 패턴과 다른 바 없다. 이 공통하는 분모를 그랜드디자인이라 할 수 있거니와 

다만 안태가 시체 매장과 다른 점은 전자가 갓 태어난 아이의 무병장수를 기원한다는 점에서, 이미 그런 삶을 다하고 티끌로 돌아가는 과정에의 시작인 시체 매장과는 갈 길이 다르다.

다만, 그럼에도 그것이 매장이라는 점에서 하등 다를 수는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안태는 시종일관해서 동시대 시체매장과 똑같은 패턴을 이루게 된다. 

이 안태가 한국문화에 정확히 어느 시점에 나타나 전개되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김유신 사례를 보건대 삼국시대 일찍이 나타난 것만은 틀림없다. 
 

대구 광해군 태실. 이거 보면 뭐가 생각나는가?

 
문제는 그 기원이 자생인가 혹 외래인가 하는 점인데, 이 경우 외래와 자생은 분기점을 어디다 두느냐에 따라 왕청나게 달라진다. 다시 말해 예컨대 그것이 중국 혹은 일본에서 넘어왔다 해서, 그 중국 일본을 어떻게 봐야 하는냐 하는 문제가 돌발하거니와, 그것을 현대 국경의 개념으로 접근할 수는 없다. 

나는 이 안태문화는 어느 시점 동아시아 어느 지역 공통하는 문화로 본다. 다만, 그것이 증거로 포착되는 시점은 아무래도 중국 쪽이 빠른데, 이것이 기록의 완비 구존에서 말미암음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 지금으로서는 확실히 단안할 수는 없다. 

다는 신라 고구려 백제가 등장하던 무렵, 혹은 그 이전 동아시아문화권을 나는 기존 학계 시각과는 매우 다르게 그리는데, 이 무렵 한반도 중남부는 현대의 중국 장강문화권과 일정하는 공통 문화 분모가 다대하다고 보는 사람이라, 

저 안태 문화만 해도 현재 우리한테 주어진 자료에 의하건대, 마왕퇴 백서 중 태산서胎産書에서 명확히 확인된다. 물론 그 안태문화가 우리한테 익숙한 그 안태문화의 그것인가는 당연히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지만, 다만, 하나 관통하는 분모는 태를 신성시했다는 점이며 그런 까닭에 그것을 어떤 형식으로건 매장해야 한다는 발상에는 다름이 있을 수는 없다. 

중국에서는 유독 장강 문화권이라 분류할 만한 남방문화권에서 저 안태문화가 성행했는지는 내가 아직 알 수 없다. 

이야기가 옆길로 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안태는 동시대 시체 매장과 일정한 패턴을 이루기에, 나아가 이를 접근할 때는 불교계 안태문화 역시 빠뜨려서는 안 된다.

동시대 불교계 안태문화란 바로 사리장엄을 말하거니와, 이 사리장엄은 실상 부처님을 매장하는 의식이라, 그 매장이라는 특성에서 실상 사리장엄과 안태 문화의 그것은 실상 일란성쌍둥이다. 

그 안태하는 공간 일체를 태실胎室이라 하거니와, 이 태실은 계층에 따라 왕청나게 전개양상이 달라지지 시작하는데 왕실의 경우 실상 왕릉에 비견한다. 그런 까닭에 태실은 시종일관해서 왕가의 경우 왕가의 무덤을 떼어놓고 접근할 수는 없다. 

이 왕가 태실은 공통하는 입지조건을 보이거니와, 이럴 때마다 어째 이놈들 하는 말이 매양 풍수타령이라, 이딴 풍수타령, 이딴 배산임수 타령, 이딴 자연과의 조화 이딴 타령 그만할 때도 됐다 싶은데, 또 이런 걸 들고나오는 모습을 보고는 실은 기절초풍하겠다 싶다. 

이젠 좀 다른 얘기할 때도 되지 않았니? 

오늘은 일단 이 정도로만 긁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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