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알 만한 토마토를 키우는 비닐하우스다.
옛날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한 농가 수익 작물이다.
동네 형님 젊은 아들 내외가 들어와서 아예 정착해 농업을 생업으로 삼아 자식들 다 공부시키고 한다.
같은 땅이지만 세대가 바뀌고 농법이 바뀌니 농사로도 먹고 사는 시대가 우리 동네에서 열렸다.
포도다.
김천서 포도야 조마가 유명했으니 거긴 감천이라는 낙동강 지류가 만든 충적평야가 발달한 덕분이다.
집 우물가에나 한두 그루 심던 포도가 이 산촌에서도 출하를 목적으로 대량 재배되기 시작했다.
같은 땅인데 주리기만 해서 하루하루를 버티기도 힘든 날에 견주면 격세지감이라 소출도 없는 논을 오로지 먹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주구장창 나락 농사만 지어댔다.
그래서 열 식구가 바글바글 일단은 먹기는 했다.
하지만 농사는 하늘의 변덕에 달렸으니 비라도 많이 오는 시즌이면 어김없이 나락은 병이 들어 쭉정이만 선사하고 멸구가 덮쳐 그나마 남은 나락도 검게 갉아먹었다.
저 들녘에 경운기가 보인다.
저 경운기는 어린시절엔 없었다.
그것이 들어오며 지게랑 리어커에 의지한 고단한 삶은 또다른 단계로 접어들었다.
지례로 김천으로 백리길 오일장을 걸어다녀오던 보부상 시절을 끝낸 장본인이 저 경운기라
비록 가끔 미류나무 양쪽으로 무성한 비포장 도로를 온동네 사람들이 저 경운기 타고 다녀오다 차량이랑 충돌을 일으켜 심지어 목숨을 앗아가는 비극이 있기는 했지만 저 경운기는 보부상 시대를 끝장냈다,
저 비닐하우스 경운기는 비록 우리 동네 기준이기는 하나 가난의 질곡에 시달리던 이 산촌에는 한 줄기 빛이었고 어쩌면 산업혁명이었다.
이런 점들이 근자 수원에서 개관한 농업박물관에서 어찌 처리했는지 모르겠지만 반드시 논급해야 한다.
저들은 진짜한 또 다른 농업혁명을 불렀으니 나락의 포기였다.
그때는 나락이 없으면 죽는다 생각했다.
그래서 천수답이란 이름으로 물이 날 만한 곳이라면 죽으라 논을 만들어 벼농사를 지었다.
그것이 사는 길이라 믿었기에.
그런 이 농촌에, 거름이라곤 똥간에서 똥장군에 지다 나른 똥오줌 말고는 없던 그런 농촌에 비로 나락을 포기하니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지나고 보니 나락 농사만큼 멍청한 짓 없다.
나락을 뽑아버리고 다른 작물로 돌아서니 비로소 농촌도 먹는 문제에서 벗어났다.
이것이야말로 농업혁명 아니겠는가?
또 하나 도시화 산업화 바람에 대가족이 해체하고 이농현상이 발생함에 따라 농촌이 살아난 이야기도 있지만 이건 두어번 말한 적 있으므로 생략한다.
'ESSAYS & MISCELLANI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디아나 존스의 낭만은 잊으라 (0) | 2023.08.15 |
---|---|
부끄럽다 피한 적 없다 (0) | 2023.08.15 |
국가유산산업전, 갈아 엎고 새판 짜라 (0) | 2023.08.13 |
선악의 이분과 적대적 변용 (0) | 2023.08.13 |
농업은 그 자체가 환경파괴 (0) | 2023.08.1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