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681년 7월 1일, 일세의 영걸英傑 문무왕 김법민이 죽었다. 625년 혹은 626년 무렵, 그보다 몇 곱절을 능가하는 호걸 김유신이 기획한 축국 쇼에서 잉태한 그는 아버지 김춘추가 즉위하여 태종무열왕이 되자, 그 장자로 태자로 책봉되고 아버지를 따라, 또 외삼촌을 따라 전장을 누빈 전쟁 영웅이니, 백제를 멸하고 의자왕과 그 태자를 사로잡은 항복 조인식에서는 백제 태자 얼굴에 가래침을 뱉어버린 격정의 소유자였다.
그가 죽자 유서가 공포되었으니, 오늘내일 목숨이 경각에 달린 그 자신 직접 썻을 리는 만무하고, 당대를 대표하는 어느 문장가가 김건희 박사 논문 쓰듯 대필하듯 했으니, 그 전문이 삼국사기 신라본기 권 제7 신라본기 제7, 문무왕본기下에 수록되었으니 명문 중의 명문이라 맨 뒤에 첨부하니 일독하기 바란다.
이 조서에 김법민이 아들 김정명한테 이르기를
종묘의 주인 자리는 잠시도 비울 수 없으니 태자는 즉시 관 앞에서 왕위를 잇도록 하라. [宗廟之主, 不可暫空, 太子即於柩前, 嗣立王位.]
라 했으니, 임금 자리는 그런 자리다. 비단 저때만 저리했겠는가? 왕이 통치하거나 군림하는 모든 사회는 원칙이 저러했으니, 그 원칙을 새삼 확인한데 지나지 않는다.
장장 70년을 재위한 영국과 영연방 여왕 Elizabeth II가 영국시간 2022년 9월 8일, 향년 96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그가 죽자 그 장자이자 왕세자인 찰스가 그 자리서 왕위를 이으니 The king never dies 라는 전통에 따름이다.
영국 왕실이나 신라 왕실이나 종묘를 주관하는 주인 자리는 하시라도 비울 수 없는 법이라, 엄마 아부지 관뚜껑 앞에서 그 시신에서 따뜻함이 사라지기 전에 대권은 후계자로 바로 옮아가는 것이니, 그렇게 인류 역사는 새로운 시대를 끊임없어 열어제끼며 현재에 이르렀으니, 미래에도 그럴 것이다.
저 자리가 대한민국은 대통령으로 바뀌었지만, 임기가 끝나는 그날 자정, 정확히 이 시점을 기점으로 대권은 후계자로 넘어간다.
왜?
종묘를 주관하는 자리는 하시라도 비울 수 없기 때문이다.
문무왕 유서
(한국학중앙연구원 번역을 전재하지만, 문맥을 바꾸고 일부 오역은 바로잡으려 했지만, 여유가 나지 않아 중간 이하는 그대로 긁어온다.)
“과인은 나라가 운運이 어지럽고 전란의 시대를 당하매 서쪽을 정벌하고 북쪽을 토벌하여 능히 영토를 안정케 하고, 배반한 자들은 치고 제휴하고자 하는 자들은 불러들임으로써 멀고 가까운 데를 두루 평안케 하니, 위로는 조상들이 남기신 염려를 풀어드렸고 아래로는 부자父子의 오랜 원한을 갚는 한편 산 사람과 죽은 사람한테 두루 상을 주고, 안팎에는 균등하게 벼슬을 주고, 무기는 녹여 농기구를 만들고 검은 머리 백성들은 인수仁壽케 했으며, 세금은 가볍게 하고 요역을 줄이니 집집마다 넉넉하고 사람들이 풍족해졌으며 민간은 안정되고 나라 안은 걱정이 없어지며 곳간엔 곡식이 언덕과 산처럼 쌓이고 감옥은 풀이 무성하게 되니 조상들께 부끄럼이 없고 관리와 백성들한테는 부담을 주지 않았다 할 만하지만 스스로 풍상을 무릅쓰다 마침내 고질이 되고 정치와 교화에 근심하다 다시 더 심한 병이 되고 말았으니 운명은 가고 이름만 남음은 예나 지금이 마찬가지라 문득 긴 밤으로 돌아감을 어찌 한스럽다 하겠는가? 태자는 일찍이 밝은 덕을 쌓으면서 오래도록 대권을 이을 자리에 있었으니 위로는 여러 재상에서부터 아래로는 뭇 관리에 이르기까지 모두는 죽은 사람을 보내는 도리를 어기지 말고, 살아 있는 임금을 섬기는 예의를 빠뜨리지 말 것이니, 종묘의 주인 자리는 잠시도 비울 수 없으니 태자는 즉시 관 앞에서 왕위를 잇도록 하라. 또한 산과 골짜기는 변하여 바뀌고 사람의 세대도 바뀌어 옮겨가니, 오吳왕의 북산北山 무덤에서 어찌 금으로 만든 물오리의 고운 빛깔을 볼 수 있을 것이며 위왕魏王 서릉西陵의 망루는 단지 동작銅雀이라는 이름만을 들을 수 있을 뿐이니 지난날 모든 일을 처리하던 영웅도 마침내 한 무더기 흙이 되면, 나무꾼과 목동은 그 위에서 노래를 부르고 여우와 토끼는 그 옆에 굴을 파는 법이니 헛되이 재물을 쓰면 서책書冊에 꾸짖음만 꾸짖음만 남길 뿐이라 괜시리 사람을 수고롭게 하는 함으로써 죽은 사람 넋을 구원하는 짓은 할 짓이 못 된다. 가만히 생각하면 슬프고 애통함이 그치지 않겠지만 이와 같은 것은 즐겨 행할 바가 아니다. 죽고 나서 열흘 뒤에 곧 고문庫門 밖 뜰에서 서국西國의 의식에 따라 화장할 것이니 상복의 가볍고 무거움은 정해진 규정이 있으니, 장례를 치르는 제도를 힘써 검소하고 간략하게 할 것이며 변경 성城·진鎭을 지키는 일과 주현州縣의 세금 징수는 긴요한 일이 아니면 당연히 모두 헤아려 없애고 율령격식律令格式에 불편한 것이 있으면 곧 다시 고치도록 할 것이니 멀고 가까운 데다가 모두 널리 알려 이런 뜻을 알게 할 것이니 이를 주관하는 자들은 시행할지니라.
“寡人運屬紛紜, 時當爭戰, 西征北討, 克定疆封, 伐叛招携, 聿寧遐邇. 上慰宗祧之遺顧, 下報父子之宿寃, 追賞遍於存亡, 䟽爵均於内外. 鑄兵戈爲農器, 驅黎元於仁壽. 薄賦省傜, 家給人足, 民間安堵, 域内無虞. 倉廩積於丘山, 囹圄成於茂草, 可謂無愧於幽顯, 無負於士人. 自犯冒風霜, 遂成痼疾, 憂勞政教, 更結沉痾. 運徃名存, 古今一揆, 奄歸大夜, 何有恨焉. 太子早藴離輝, 久居震位, 上從羣宰, 下至庶寮, 送徃之義勿違, 事居之禮莫闕. 宗廟之主, 不可暫空, 太子即於柩前, 嗣立王位. 且山谷遷貿, 人代椎移, 吴王北山之墳, 詎見金鳬之彩, 魏主西陵之望, 唯聞銅雀之名. 昔日萬機之英, 終成一封之土, 樵牧歌其上, 狐兔穴其旁. 徒費資財, 貽譏簡牘, 空勞人力, 莫濟幽魂. 靜而思之, 傷痛無已, 如此之類, 非所樂焉. 屬纊之後十日, 便於庫門外庭, 依西國之式, 以火燒葬. 服輕重, 自有常科, 喪制度, 務從儉約. 其邊城·鎮遏及州縣課稅, 於事非要者, 並冝量癈, 律令格式, 有不便者, 即便攺張. 布告遠近, 令知此意, 主者施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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