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산성으로 알려진 창녕 구진산성, 비화가야 때 축조됐다
김선경 / 2022-09-23 14:55:28
창녕군, 5개월 발굴조사…가야시대 토목기술·토기편 등 확인
먼저 이 산성은 나로서는 무척이나 생소하거니와, 그래서 대체 이 요물이 무엇인지 검출을 해 보니,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라 해서 문화재청이 기본 정보는 제공하니 이전 이름은 창녕 고곡산성鼓谷山城 이라 한 모양이다.
저리 지정된 때가 1983년 8월 6일이라 하니 일찌감치 문화재로서는 인지된 듯하고, 정확한 지번은 경남 창녕군 남지읍 고곡리 산193번지 일대라 한다. 소유단체는 성종산 이라는데, 사람 이름인가? 사람 이름은 밝히지 않음이 상례인데 종중산인가? 암튼 이번 조사 이전까지 저에서 제공하는 기본 정보는 아래와 같다.
고곡산성은 경상남도 창녕군 남지읍 고곡리에 있는 산성으로, 산의 동쪽 6부 능선을 타고 서·남으로 향하면서 타원형을 그리고 있다. 성벽은 돌과 흙을 섞어 쌓았는데, 사다리꼴의 형태를 띄고 있다. 전체적인 형태는 남아있지만, 무너져 내린 부분이 많다.
이 지역이 옛 가야의 영토였다는 점과 성을 쌓은 방법으로 보아 가야 때 쌓은 성으로 추정되며, 조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 망우당 곽재우 장군이 침입한 왜군을 막아내기 위해 다시 쌓았다고 전해진다. 1950년 한국전쟁 때에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이기도 하다.
2002년에 구진산성에서 고곡산성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문화유적총람 에서는 구진산성九鎭山城이라 한 모양이다. 국토지리정보원에 제공하는 지도에다가 저 지번을 찍어 보니 아래다.
네이버 위성지도로 저 분포지점 긁어보면 왜 저짝에다가 산성을 쌓았는지는 명확하다.
볼짝없이 낙동강 수계 관리다. 간단히 말해 낙동강을 오가는 관문이라, 삥뜯는 자리다. 더불어 낙동강을 도하하는 지점 길목이다.
이 구진산성, 곧 고곡산성을 창녕군 의뢰로 판 모양이라, 아래는 그에 대한 창녕군 보도자료다.
창녕군 구진산성, 비화가야 최초의 산성으로 밝혀져
작성일 2022-09-23 18:24:50 작성자 기획예산담당관
= 조선시대 산성으로 알려졌으나 조사결과 비화가야 세력 산성으로 확인돼 =
창녕군은 남지읍 고곡리에 위치한 비화가야 최초의 산성인 구진산성을 발굴조사했다고 23일 밝혔다.
구진산성 발굴조사는 비화가야 역사문화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경상남도 비지정 가야유적 조사연구 지원을 받아 진행됐다.
구진산성은 낙동강 동안에 우뚝 솟아있는 구진산(해발 308m) 정상부를 감싸는 테뫼식 산성(산봉우리를 중심으로 성벽을 두른 산성)이다. 산성의 이름은 임진왜란 당시 곽재우 장군이 9개의 진을 펼쳐 왜군을 물리쳤다고 해 붙여진 것으로, 조선시대 산성으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이번 발굴조사 결과, 성벽 기저부에 석축 기단을 조성하고 그 위로 토제(土堤)를 활용한 가야시대 토목기술이 확인됐고, 성벽 내부에서는 5세기대 비화가야의 토기편들이 출토돼 창녕 비화가야 세력에 의해 축조된 성벽인 것이 밝혀졌다.
구진산성은 지리적으로 낙동강 동안에 위치하고 있어 삼국시대 방어 거점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군 관계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추진 중인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과 더불어 비화가야의 종합적인 복원을 위해 생산유적, 성곽유적 등 여러 문화유산들을 조사하고 있다. 앞으로도 체계적으로 조사 및 연구를 진행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담당부서: 문화체육과 가야사복원팀(530-7453)
이걸 창녕군에서 직접 팠을 리 만무하고, 어느 전문조사기관에 의뢰했을 터인데 어느 기관인지를 밝히지 아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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