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계절의 노래(38)
교외로 나가[出郊]
[송(宋)] 공평중(孔平仲) / 김영문 選譯評
밭둑 아래 샘물 졸졸
봄비는 맑게 개고
무수한 새 벼 포기
일제히 살아났네
한 해의 농사는
지금부터 시작되어
서풍이 불어올 때
옥 열매 맺으리라
田下泉鳴春雨晴, 新秧無數已齊生. 一年農事從今始, 會見西風玉粒成.
(2018.05.21.)
어젯밤과 오늘 아침까지 내린 봄비에 냇물이 넉넉하게 불어났다. 한창 모내기에 바쁜 농촌에 이보다 더 큰 선물은 없다. 지금은 거의 기계로 모내기를 하지만 옛날에는 다 손으로 심었다. 이 논둑에서 맞은편 논둑까지 못줄을 길게 치고 농군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나누어 선다. 대개 오른손잡이가 많으므로 먼저 오른편으로 모를 심어 나가다가 옆 사람이 심어놓은 자리에 닿으면 다시 한 줄 앞으로 나와 반대쪽 왼편으로 심어나간다. 그렇게 모두 힘을 합쳐 두 줄을 심으면 다시 못줄을 앞으로 넘긴다.
그런데 손이 느려 자신의 몫을 제대로 완수하지 못하면 옆 사람에게 더 많은 일을 맡기는 꼴이 되므로 재빨리 손을 놀려 옆 사람과 보조를 맞춰야 한다. 손이 빠른 사람은 중간 중간 허리 펼 여유를 얻지만, 손이 느리면 못줄이 넘어가는데도 허리를 펴지 못하고 논바닥에 엎드려 모 포기를 죽어라고 꽂아야 한다. 초보자들은 허리가 빠개지는 듯한 고통에 숨도 쉬기 힘들 정도다. 멀리서 보면 농요를 부르며 한가하고 낭만적인 풍경을 연출하는 듯 보이지만 그 내면에는 이처럼 살벌한 경쟁과 고통이 숨어 있다.
모를 심은 후 사나흘 간은 모가 시들시들 죽어가는 듯 보인다. 새로 심은 모가 아직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며칠 지나면 잎이 꼿꼿하게 펴지며 벼가 생기를 회복한다. 우리 시골에서는 이런 상황을 ‘사림(사름) 됐다’라고 표현한다. 아마 ‘살림’ 혹은 ‘살음’에서 온 말인 듯하다. 생기를 회복한 벼논은 초록색 물결을 이루며 가을날 옥 같은 열매를 맺기 위해 여름철 뜨거운 태양을 맞아들인다.
덮지도 춥지도 않은 농촌 음력 4월(양력 5월)은 훈풍이 불고, 봄비가 넉넉히 내리고, 보리가 무르익고, 누에가 고치를 치고, 모내기를 하는 희망의 계절이다. 이 시는 농촌의 그런 소소하지만 넉넉한 일상을 잘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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