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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사라진 정월대보름 달집태우기, 방화본능이 변질한 불멍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2. 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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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는 화재, 특히 산불 위험을 앞세운 관계 당국의 엄혹한 단속에 이 습속이 종적을 감추곤 그저 해수욕장이나 박물관 마당에서 소방차들 대기한 가운데 깔짝깔짝대며 숭내만 내고는 말지만, 산촌 깡촌 출신인 내가 어린시절만 해도 그 장엄한 의식이 남아 이날 달집을 태우곤 했으니

문제는 박정희 시절인 그때도 단속은 대단해서 달집태우지 말란 경고가 계속 내려왔으나 그에 아랑곳없이, 혹은 허름한 단속을 피해 대보름이면 달집을 만들어 피워댔거니와

내 기억 저편에 남은 것을 보면 그 선호하는 지점은 동산이었으니, 그 동네를 사방에서 조망하는 산 꼭대기에다가 달집을 만들어 태웠다. 혹 가다가 동네 논 한가운데다가 지어 태우기도 했지만, 원칙은 동산이었다.

나원 쪽팔려서...이게 달집인가?


쥐불놀이도 이 무렵에 했는지 어땠는지 기억에 아른아른하지만, 이 쥐불놀이는 통조림 깡통을 재가공해 만들었으니, 그 빈 깡통은 못 같은 도구로 망치로 쳐서 곳곳에서 숨구멍을 만들고는 그 안에다가 그 전에 미리 산에서 채취한 관솔을 주로 넣어 태우고는 팔이 빠져라 졸라 돌리며 뛰어다녔으니, 관솔이 뿜어내는 화력은 대단했다는 기억이 있으니 이 관솔이 주는 유일한 단점은 검댕이가 졸라 많이 생긴다는 그것이었다.

관솔은 뒷동산 소나무 옹이를 톱 같은 것으로 잘라 채취했으니, 소나무 말고 노간주 나무 역시 애용했다는 기억이 있다. 쥐불을 흔들며 주로 논두렁 같은 데다가 붙여 마른 풀을 태우곤 했으니, 이 전통이 계절을 벗어나 주로 여름이 가을이면 밤에 요소 비료 푸대 덮어쓰고는 논두렁 땡삐집을 박살내는 놀이로 발전했거니와 이파리 무성한 소나무 가지로 열라 벌집 구멍을 패서 땡삐들을 박살내곤 했으니, 그것을 박멸하고자 아예 불을 놓기도 했다.

달집은 원추형에 가깝게 만드는데, 가운데는 그 원추를 구성하는 비교적 굵은 가지들로 얽고는 그 주변을 돌아가며 주로 생가지들을 거름더미처럼 쌓아 올려 만들었으니, 가장 애용한 나무는 소나무였다.

이 소나무가 상록침엽수라 하지만, 또 겉으로 보기에는 시푸르딩딩한 듯하지만, 이 친구들도 항시 푸른 것도 아니요 겨울이면 바짝 마른 데다 송진가루 성분이 많이 잘 타고 타면서 그 특유한 소리를 내곤 했으니, 그 감이 좋았다.

달집을 못태우니 이것도 실감 대체인가?


그것이 타는 장면이 주는 황홀을 상기하면 왜 방화범들을 함부로 욕할 수는 없는지 안다. 나는 인간 본성에서 방화 본능이 내재한다고 본다. 활활타오르는 달집이 주는 그 황홀, 그 열기 경험해 보지 아니하면 모른다.

그런 달집태우기가 어느날 순식간에 종적을 감추고 말았으니, 그렇다고 내가 그 전면하는 부활을 부르짖지는 않겠지만, 저 방화본능이 분출하는 공간을 열어주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달집태우기를 막으니 메가리없는 불멍이 유행하지 않겠는가?

말하노라!

불멍은 방화본능의 분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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