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계절의 노래(204)
경복궁 은행나무
나무 심지 마라(莫種樹)
[唐] 이하(李賀) / 김영문 選譯評
뜨락 안에 나무를
심지 마시라
나무 심으면 사시사철
시름에 젖네
혼자 잘 때 남쪽 침상에
달빛 비치면
올 가을이 지난 가을과
흡사할 테니
園中莫種樹, 種樹四時愁. 獨睡南床月, 今秋似去秋.
한자로 시름을 나타내는 말은 ‘수(愁)’다. ‘愁’를 파자하면 ‘추심(秋心)’ 즉 ‘가을 마음’이 된다. ‘가을 마음’이 바로 시름이다. ‘수심(愁心)’, ‘애수(哀愁)’ 등에 모두 ‘가을 마음(愁心)’이 들어간다. 가을에 사람의 가슴이 쓸쓸해지는 현상의 유래가 매우 오래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하의 이 오언절구는 바로 시름에 관한 시다. 보통이라면 뜰 안에 꽃도 심고 나무도 심어서 사시사철 그 풍경을 즐기라고 권할 테지만 이하는 뜰 안에 나무를 심지 마라고 만류한다. 무슨 이유인가? 나무를 심어놓으면 사시사철 시름에 젖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시름은 어디서 오는가? 사계절 중 삼계절은 언급하지 않고 가을의 경우만 예로 들고 있다. 달빛 비치는 남쪽 침상에 혼자 잠을 청할 때 그 가을 풍경이 지난 가을 풍경과 흡사할 터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럼 봄, 여름, 겨울 풍경은 흡사하지 않을까? 물론 똑 같이 흡사하다. 당나라 유희이(劉希夷)는 「백두음(白頭吟)」에서 “해마다 피는 꽃은 서로 비슷하지만, 해마다 보는 사람 서로 같지 않네(年年歲歲花相似, 歲歲年年人不同.)”라고 읊었다. 봄꽃은 모두 져도 내년에 다시 피고, 가을 기러기 울고 가도 내년에는 돌아온다. 하지만 인간의 청춘은 한 번 가면 다시 오지 않고, 새로 돋은 백발은 다시 흑발로 변하지 않는다. 올해 달빛은 작년과 같지만 먼 길 떠난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 천장지구(天長地久)의 자연 앞에 인간의 삶은 하루살이일 뿐이다. 온 산천에 단풍이 더욱 짙어지고 있다. 내년에는 다시 푸른 잎이 돋아날 저 나무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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