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계절의 노래(203)
산속(山中)
[唐] 왕유 / 김영문 選譯評
경주 경덕왕릉
형계 시냇물에
흰 돌 드러나고
날씨는 차가워
단풍 잎 드무네
산길엔 원래
비도 오지 않았는데
허공의 비취빛
옷깃 적시네
荊溪白石出, 天寒紅葉稀. 山路元無雨, 空翠濕人衣.
한자로 ‘남기(嵐氣)’란 말이 있다. 산 속에서 생기는 푸르스름한 기운이다. 벽옥색인 듯 하지만 오히려 청옥색에 가깝고, 청옥색인 듯하지만 벽옥색에 가깝게 보이기도 한다. 멀리 보이는 명산일수록 드넓은 남기가 사방을 감싼다. 남기의 푸른색은 유토피아(烏託邦)의 빛깔로 인식되기도 한다. 청학동(靑鶴洞)의 푸른색이 그러하며 스테인드글라스의 푸른색이 그러하다. 하늘은 푸른색이지만 색의 실체가 없으며 바다 또한 푸른색이지만 색의 실체가 없다. 푸른 장미 또한 그런 색깔일까? 가을에는 하늘이 맑아지면서 온 산천의 남기가 우리 곁에까지 스며든다. 유토피아가 가까이 다가오는 셈이다. 도연명은 「음주(飮酒)」 다섯 번째 시에서 일상 속에 스며든 남기를 이렇게 노래했다. “산 기운은 저물녘에 아름답고,/ 나는 새들 서로 함께 돌아오네./ 이 속에 진정한 뜻 스며 있나니,/ 말 하려 해도 말을 잊었네.(山氣日夕佳, 飛鳥相與還. 此中有眞意, 欲辨已忘言.)” 왕유는 그렇게 다가온 남기의 비취빛이 사람의 옷깃을 적신다고 했다. 기화(氣化)와 액화(液化)의 경계가 사라졌다. 이런 곳에서는 물이 언제나 안개가 되고, 남기는 언제나 만물을 촉촉이 적시며, 인간은 언제나 신선이 된다. 우리 옷깃을 적시는 남기가 우리를 신선의 경지로 이끈다. 가을은 우리 소소한 일상을 유토피아로 승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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