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探古의 일필휘지

사천 선진리성을 가다(2) 여름철새 후투티가 뛰어노는 400성상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3.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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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성은 사람이 들어가 살기 위한 공간이라기보다 적을 끌어들여 싸우기 위한 시설이라 봐야 맞는다. 성문부터가 복잡하다.

우리나라 성도 옹성이나 치 같은 걸 설치해 놓기는 하지만, 왜성처럼 이리저리 동선을 꺾어서 사람을 궁지로 몰지는 못한다. 발굴조사로 확인해 복원한 이 선진리성 성문이 딱 그렇다.

벽을 세워 한 번 두 번 길을 꺾고 그 앞에 총구멍을 떡하니 둔다. 어찌어찌 문을 통과한다 해도 나오는 건 핵심 시설이 아니라 뒤쪽 성벽이다.




지키는 입장에선 좁은 공간을 지킬 병력만 있으면 되지만 치는 쪽이라면? 골치깨나 아팠을 것이다.

사실 여기는 2010년대 발굴을 거치고 성벽 상당수를 새로 쌓다시피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뭔가 압력을 이기지 못해 깨진 돌들이 성벽 곳곳에 보인다.

하지만 돌 색깔이 묘하게 고태가 나니 문외한인 내가 보기엔 그저 감탄할 뿐이다. 면도날처럼 베일 것 같은 성벽 모서리며, 곳곳에 나뒹구는 기왓장...




기와를 보다보니, 일본군이 가마를 쌓고 기와를 구웠을지 아니면 근처 절이나 관아에서 걷어내 날라다 지붕을 이었을지, 사뭇 궁금해진다.

한바퀴 안팎을 쭉 돌아본 결과, 규모가 그리 큰 편은 아닌데도 점령한다고 하면 머리를 엄청 써야 할 것 같다. 하물며 그 시마즈 요시히로가 있는 성이라면야.

이순신이 싸운 바다를 보고 있는 사천해전승첩기념비는 전형적인 70년대 스타일이었다.




하늘을 찌르는 하얀 뽈대에 금빛 글자(이건 교체된듯도), 추상에 가까운 배경 조각...그래도 그 뒤에 선 충령비보다는 소박하고 또 진정성이 느껴진다.

일제 때는 시마즈 요시히로를 기리는 비석이 있었다는 천수각(일본 성의 중심이 되는 망루) 자리엔 공군 전몰장병을 기리는 '충령비'가 섰다.




개인적으로 나는 공군 출신이라 김영환 대령 같이 아는 이름이 더러 보여서 반갑기는 했다. 하지만 이 자리에 굳이 이런 비석을 세워야 할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대한민국 공군이 전국시대 일본군을 내리누른다는 1차원적 이유는 아니었기를 바란다. 화장실 모양도 세상에 설마 거북선을 본뜬 것인지?




주변 자연환경이 좋아서인지 새소리가 끊이지 않고 또 먹이를 찾는 새들이 적지 않았는데, 물까치야 그렇다쳐도 여름철새라는 후투티가 여러 마리 눈에 띈다. 지구온난화가 이런 데서도 느껴진다니...

400년 전 성터를 다니며 퍽 많은 것을 생각하다 보니 어느덧 400년 뒤 현재로 내려온다.

멀리 보이는 저 산은 그때를 기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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