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경복궁을 횡단해 건추문 쪽으로 나가다 보니, 저 은행나무 이파리가 단 한 개도 남아있지 않음을 봤다. 이 은행나무는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이번 가을은 다른 데 은행나무에 정신이 팔려 전연 이곳 단풍은 눈길 한 번 주지 못하고 지나가 버렸다.
서울에 서리가 내리기 전에 이미 은행은 단풍이 되어 지상으로 꼬꾸라졌다. 상엽霜葉, 즉, 서리맞은 단풍이라는 말은 무색하니, 여태까지 죽 그랬다.
그 인근 주택가를 지나다 보니 단풍나무 단풍이 한창이다. 조만간 지리라. 서리가 오기 전에 지리라. 이때까지 죽 그랬다. 서리 맞아 생긴 단풍은 본 적이 없다. 내가 아는 모든 단풍은 서리가 오기 한창 전에 이미 단풍 되어 낙엽落葉로 사라져 갔으니깐 말이다.
그러고 보니 화려한 단풍을 묘사하는 절창 중의 절창, 다시 말해 상엽홍어이월화(霜葉紅於二月花), 서리맞은 단풍 2월 봄꽃보다 붉다는 말은 도대체가 어불성설임을 안다. 물론 채 떨어지지 않은 단풍이 가끔 서리를 맞기도 하나, 그렇게 서리맞은 단풍이 서리 때문에 단풍이 든 것도 아니요, 이미 단풍인 상태에서 서리를 맞은 것이니, 분명 저 표현은 문제가 있다.
저 말을 <산행(山行)'이라는 시에서 내뱉은 당말 시인 두목(杜牧)은 이걸 몰랐을까? 그가 바보가 아닌 이상 알았을 것이요, 막상 저 말이 일대 유행했을 적에는 두목을 가리켜 서리 맞은 단풍이 말이 되느냐 하는 핀잔이 적지 않았을 것으로 본다.
뭐, 문학 혹은 문학적 감수성이 과학 혹은 엄격한 절기와는 다르다면 할 말이 없다만, 그럼에도 존재할 가능성이 제로인 서리맞은 단풍이라는 상상의 산물이 가을 단풍의 실제를 더욱 화려찬란하게 포장했으니, 참말로 기구한 운명일 수밖에 없다.
단풍이야 서리를 맞아 들건, 그 전에 들어 떨어지건 무슨 상관이랴?
붉기만 하다면, 그리하여 그 붉음이 내 단심丹心과 합심한다면야 그 비롯함이 서리건 아니건 무에 중요하겠는가? 피장파장 똥끼나밑끼나일 뿐....
서리맞은 단풍이야 그렇고, 서리맞은 배추이파리는 내가 무지막지하게 봤다.
'역사문화 이모저모 ' 카테고리의 다른 글
Veni, vidi, vici...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2) | 2018.12.04 |
---|---|
두 개의 씨름 Ssirum과 Ssireum (6) | 2018.11.26 |
이규보가 증언하는 배불뚝이 포대화상 (0) | 2018.11.11 |
"내 문장은 한 글자도 손 못댄다"는 고봉 기대승 (0) | 2018.10.31 |
18세기, 한반도는 인구가 폭발했다 (2) | 2018.10.2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