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씨름이 26일 아프리카 모리셔스(Mauritius) 수도 포트 루이스(Port Louis)에서 개막한 제13차 유네스코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간 위원회(무형유산위원회·the Intergovernmental Committee for the Safeguarding of the Intangible Cultural Heritage)에서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the Representative List of the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Humanity에 등재(inscription)됐다. 등재 목록 이름은 조금은 요상해 'Traditional Korean Wrestling, Ssirum/Ssireum'이거니와, 굳이 이를 옮기면 '전통의 한국 레슬링, 씨름'이 된다.
씨름이면 씨름이지, Ssirum은 뭐고 또 Ssireum은 무슨 뼉다귀인가? 이는 어쩔 수 없는 타협의 소산이거니와, 앞서 우리는 '대한민국의 씨름(전통 레슬링)'(Ssireum, traditional wrestling in the Republic of Korea)이라는 타이틀로, 반면 북한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씨름(한국식 레슬링)'(Ssirum<Korean wrestling> in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이라는 영문 명칭으로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신청서를 제출했으며, 이것이 둘다 등재 권고 판정을 받은 데서 비롯한다.
유네스코로서는 같은 성격의 같은 민속놀이를 두 국가체가 각기 다른 이름으로 등재신청서를 보내왔으니, 이래서는 좀 곤란하겠다 싶어, 아니면, 이 참에 국가간 화해라는 유네스코 정신도 마음껏 선전도 해 볼 불순한 정치적 목적으로 내세워 그래 그렇다면 너네 각기 하지 말고 둘이 합쳐서 한꺼번에 한 건으로 만들어서 인류무형유산 하자 해서, 저리된 어정쩡한 타협의 산물인 것이다. 씨름을 정의하는 수식어로는 'Traditional Korean Wrestling'이라는 데는 남북한이 쉽게 합의했다. 하지만, 그 요체인 씨름에 대해서는 두 정치체가 합의를 하지 못한 것이다. 이런 난관에 봉착한 유엔 산하 유네스코는 그럼 가운데 슬러시를 치고 두 가지 표기를 병기하자 해서 저리하는 것으로 합의를 본 것이다.
한편으로는 절묘한 듯하지만, 저 표기를 대하는 제3 국가들은 틀림없이 의아해 할 터이니, Ssirum과 Ssireum이 별개 스포츠인양 인식한다 해서 하등 이상할 것도 없다. 그렇다면 왜 저리 다른 표기가 등장했는가?
이는 씨름에 대한 로마자표기법 혹은 영어표기법에 따른 차이에서 말미암음이니, 로마자로는 '름'의 'ㅡ'에 대응할 마뜩한 표기 수단이 없어, 이를 북한에서는 'u'라 하는데 견주어, 남한은 'eu'라고 하는 데서 비롯한다.
이런 표기 차이에서 주목할 점은 북한의 표기 'Ssirum'은 로마자표기법이 아니라 실은 영어 표기법이거나 그에 대단히 가깝다는 사실이다. 그런 까닭에 저것을 영어 표기법으로 간주해 발음한다면 "씨뤔" "씨뢈" 정도가 된다. 그에 견주어 남한 표기 ssireum은 영어 표기가 아니라 실은 로마자표기법이다. 이를 영어 표기로 본다면 저 표기는 내가 100% 자신은 없으나 "씨리엄" 정도로 발음할 것이다.
이 양반 갈수록 개콘이 되어가네
사람들이 곧장 로마자표기법과 영어 표기법을 혼동하거니와, 이런 차이를 모르는 사람 중에, 다시 말해 그것이 무슨 영문 표기인 줄 알고는 각종 잘난 척 하는 얄팍한 지식은 다 동원해 그 불합리성을 공격해 대기 여념이 없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하니, 그 용맹무쌍함에 혀를 두르고 만다. 다만, 뒤늦게 그런 사실을 알고는 조금은 머쓱해진 이런 사람 중에는 그럼에도 그 오류를 인정할 생각은커녕 여전히 핏대를 높이면서 이르기를 "세상 어떤 놈이 저걸 영어 표기로 받아들이지 로마자표기법으로 아냐"고 삿대질하기도 하거니와, 실제 내가 이런 대책 없는 자를 꽤 많이 봤다. 이는 주로 대학에서 영어영문학으로 먹고 사는 자들한테서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하지만 이는 지들이 배운 바, 혹은 지들이 아는 바가 오직 진리로 여기는 독선과 아집의 소산이다. 지들이 먹고 배운 것이 영어밖에 없으니 이 따위 망발을 일삼거니와, 한국 드라마 중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대장금'이 있거니와, 그 이름 '장금(이)'가 해외에 알려지기로는 'janggomi' 정도로 표기되었거니와, 그것이 한창 해외에서도 히트할 무렵 내가 이란을 가 보니, 이 페르시아 친구들이 한국 여자들만 보면 '양고미' '양고미'라 불러대서, 알고 보니 이것이 바로 '장금이'였다. 왜 이런 현상이 빚어지는가? 페르시아인들에게 모음 앞에 오는 j는 'ㅈ'이 아니라 '반모음'이거니와, 그런 까닭에 이는 '장'이 아니라 '양'이었던 것이다.
미국 가서 미국놈 물만 먹는 사람들한테는 미국이 최고요, 그네들 표기가 곧 세계 표기인 줄 착각하나,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깍지다. 이 지구상에는 영어 아닌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로마표기법은 약속에 지나지 않는다. 장금이라는 양고미라 발음한다 해서 그들이 무식한 것은 아니다. 그네들 전통에 따라 그리 발음할 뿐이며, 그것이 하등 그들의 무식을 증명하는 보증수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덧붙여 표기법과 관련해 하나 더 지적할 점은 쌍시옷 'ㅆ'이거니와,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넘들은 'ㅅ'과 'ㅆ'을 구별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들에게는 오직 's'만 있을 뿐이니, 하지만 그것을 구별해야 하는 우리는 편의상 'ㅆ'에 대해서는 굳이 'ss'라고 할 뿐이거니와, 's' 하나만 써도 충분할 것을 이리 한 이유는 그것을 아는 외국인은 그리 구별하라는 의사 표시에 지나지 않는다.
나아가 저 두 표기 중에서도 항용 어떤 것을 먼저 앞세우느냐는 자존심 문제와 관련하거니와, 이번 건은 남한이 양보한 느낌이 짙으니, 북한 표기를 앞세운 까닭이다. 이 점이 외신에는 미묘하게 보였는지, 예컨대 영국 일간 The Guardian은 이 소식을 Unesco accepts historic joint Korean bid to recognise traditional wrestling라는 제하 소식으로 전하면서 이르기를
The official name was listed as “Traditional Korean Wrestling (Ssirum/Ssireum)”, with the North Korean transcription appearing first.
라고 한 대목을 들 수 있다.
또 하나 덧붙이건대, 이 사건을 유네스코가 대서특필함을 주목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 공동등재는 문재인 대통령이 유네스코에 요청하고, 그것을 유네스코가 호응하는 모습을 연출함으로써 빚은 결과다. 그러니 유네스코로서도 결코 손해 볼 게임이 아니거니와, 그러기는커녕 그들 자신이 이 사건을 어찌 자리매김하는지는 그들이 전하는 다음 뉴스를 보라.
유네스코가 이 일을 얼마나 자기네 존재감을 각인하는 데 중요하게 여기는지는 이 공동등재에 그 사무총장Director-General 오드리 아줄레Audrey Azoulay가 중재한 모습을 연출했다는 점에서 다시금 확인한다. 미국의 탈퇴로 코너에 몰린 유네스코로서는 이런 일을 반전을 기회로 삼아야 함은 물론이다.
이번 공동등재에 대한 보답으로써, 혹 한국정부는 그 분담금을 더 부담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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