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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Veni, vidi, vici...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by taeshik.kim 2018. 1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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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ni, vidi, vic. 


영어로는 줄리어스 시저, 그의 시대 실제로 이탈리아 반도 본토인들이 사용한 고전 라틴어로는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가 했다는 이 유명한 말을 내가 새삼 끌어댄 까닭은 그것이 태동한 역사적 맥락이나, 그것이 현재의 실생활에서 어떤 방식으로 사용되는지를 논급하는 것과는 하등 관련이 없고, 외국어 습득과 관련한 두어 마디를 보태고자 함이다. 기원전 47년, 젤라 전투(the Battle of Zela)에서 폰투스 왕 파르나케스 2세(Pharnaces II of Pontus)를 순식간에 제압하고는 의기양양하게 카이사르가 떠들었다는 저 말이 영어로는 흔히 I came, I saw, I conquered 라고 번역하거니와,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하는 한국어 새김은 이에서 말미암는다. 


지금은 거의 사어死語가 되어 버리다시피 한 라틴어를 그에서 직접 유래한 이탈리아어나 프랑스어, 스페인어, 혹은 포르투갈어를 모국어로 쓰지 않는 데다, 더구나 나처럼 이미 반백이 지난 사람이 혹 그것을 배우고자 한다면, 그 목적이야 여러 가지겠지만, 나로서는 우선 말보다는 글이 우선이라 하고 싶다. 간단히 말해 죽어버린 라틴어를 어디에다 써먹겠다고 내가 그 말, 발음에 얽매이겠는가? 나 같은 사람한테 더욱 중대성이 점증하는 곳은 실은 말보다는 글이다. 다시 말해, 그 궁극적인 목적이야 달성할 날이 있겠냐마는 유럽 성당 머리맡이라든가, 유적지에 나뒹구는 돌판에 판 글자가 무슨 뜻인지 대강이나마 알 수 있었음은 좋겠다는 그런 소박한 바람에서 라틴어를 손이나마 대보고자 하는 것이다. 



바티칸 베드로성당..라틴어로 지껴놓았다. 저기 보이는 V는 대부분 u로 바꿔 읽으면 된다.



내 세대 많은 이가 그렇듯이, 나 역시 제2 외국어로는 영어 세례를 받고 자랐다. 그렇다고 이 영어나마 제대로 하는가 하면, 그러하지를 못해 애간장을 늘 태우거니와, 그럼에도 이미 생득적, 혹은 본능적으로 다른 언어를 체득 습득할 수 있는 나이를 훌 지나버린 한국어권 라틴어 강습자들은 라틴어를 한국어가 아니라 실은 영어로 접근하고자 한다는 사실을 주목하고 싶다. 라틴어를 한국어 구조로 접근하는 것보다 그것을 영어 구조로 접목하면, 라틴어에 접근하는 길이 훨씬 빨라진다. 라틴어가 영어와는 뿌리를 같이하는 데다, 무엇보다 영어에 침투한 단어 절반가량이 라틴어에서 유래한 까닭이다. 이는 한자를 알면, 한국어 습득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 견주어 훨씬 빠르거나 그 이해폭이 훨씬 넓은 현상에 견줄 만하다. 


라틴어는 한국어에 견주어, 나아가 영어에 견주어서도, 각 명사는 남성 중성 여성의 세 가지 성이 다 있고, 그에 따라 극심한 변화를 보이며, 동사 형용사 역시 그 문법적 환경에 따라 무수하게 모습을 달리하는 악명 높은 언어라는 사실은 익히 알려졌을 것이어니와, 이런 악조건에서도 Veni, vidi, vici가 우리한테 조금 친숙한 까닭은 이와 계통을 틀림없이 같이 하는 영어 단어가 지금도 일상에서 광범위하게 쓰이기 때문이다. 이 현재의 영어 일상어를 통해 우리는 저 라틴어 낱말들을 접근하게 되며, 이를 통해 라틴어에의 생소함을 적어도 한 꺼풀은 벗겨낼 수 있다. 


먼저 Veni를 볼짝시면, 이 단어가 영어에도 곳곳에서 살아있으니, convene이라는 동사와 그 명사형 convention이 그것이라, 접두어 con 혹은 com이 together 혹은 along with에 해당한다는 사실은 익히 알거니와, 그 어근인 vene가 바로 저 라틴어와 계통을 같이한다. 같이 와서 모이니 그게 회합하다가 되고, 그런 모임 자체를 회합이라 하는 이유다. 이를 통해 Veni라는 저 라틴어에 대한 생소함을 말살한다. 


로마 카티톨리노박물관 소장 대리석 조각. 그 머리맡에 domitianvs caesar avgvstvs라 적었다. 이를 우리한테 익숙한 철자로 로마나이즈하면 domitianus caesar augustus가 된다. 로마황제다.



다음 vidi이니, 이건 볼짝없이 video니 vision이니 visible 등등과 계통을 같이 하거니와, 이들을 관통하는 공통 분모가 to see임은 삼척동자도 안다. 


다음 vici이니, 이것이 바로 victory의 직접 조상이 됨은 그 철자로 더욱 명백하다. 


이런 식으로 보면 라틴어가 결코 저 하늘 저 우주 안드로메다에 위치하는 통제불능 접근불가능 언어는 결코 아니다. 그 조차 제대로 할 수는 없으나, 영어 세례를 받은 사람들한테 라틴어는 결코 생소하지 않다. 더구나 vocabulary 33000을 끼고 살았음에랴? 그 영단어 해설집은 실은 라틴어 단어 학습 교본이다. 우리는 이미 이 단어집을 통해 라틴어를 배운 셈이다. 


다음 발음이 문제이거니와, 그렇다면 Veni, vidi, vici를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어떻게 발음했을까? 그에 꼭 100% 접근한다 확언할 수는 없지만, 이를 '웨니 위디 위키' 정도로 말했다. 유럽 교회 대문 꼭대기에는 꼭 알아먹지 못할 라틴어 경구를 한줄 걸쳐 놓는 모습 흔히 보거니와, 그 라틴어 조금만 살피면 그에 보이는 v 중에 자음 사이에 오는 경우는 예외없이 그 발음이 u에 해당함을 미루어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예컨대 BVD라 썼으면, 그 발음은 '부드'다. 


귤이 회수라는 강을 건너 북상하면 탱자로 변하기 마련이다. 라틴어 v가 지중해를 탈출해 유럽 대륙을 건너 저 머나먼 브리튼 섬에 안착하면서 victory의 v로 변하고 말았다. 같은 알파벳을 두고 달리 발음하게 된 것이다. 애초 k로 발음한 c 역시 지중해를 탈출하자, 어떤 때는 can처럼 본래 발음을 간직하기도 했지만, 같은 Caesar가 브리튼으로 가서 씨저가 되고 말았다. 


표기가 말을 구속한 단적인 사례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절대 다수 한국인한테는 생소하기 짝이 없는 라틴어가 영어를 징검다리로 삼으면, 그리 생소하지만은 않다. 물론 이걸 믿고 만만하게 라틴어 제국에 함부로 쳐들어갔다가 떼죽음 당하는 사람이 절대다수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뭐 이렇게 말하고 보니, 내가 무슨 거창한 라틴어 전문가 같으나, 


난 라틴어를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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