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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ING HISTORY

결코 백제 무왕의 정비일 수 없는 신라 선화공주



익산 미륵사 서탑 해체과정에서 이 석탑 조성 내력을 기록한 백제 무왕시대 석탑 봉영사리기奉迎舍利記가 발견되기는 2009년 1월 14일이다. 


그것이 발견되기 이전부터 나는 결코, 때려죽여도 선화공주는 백제 무왕의 정비가 아니라고 단언했다. 후궁이라고 주장했다.

봉영사리기 출현과 더불어 내 예언은 어찌 되었는가?


내 말이 맞았다. 


무왕 정비는 선화공주 아닌 걸로 드러났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근거로 이리 주장했던가? 


미륵사 석탑 사리장엄 출토 장면



나는 아다시피 《화랑세기》를 신라인 김대문이 남긴 것으로 보는 이른바 화랑세기 진본론자다.
그 화랑세기와 세트가 되는 남당 박창화 유품으로 사진으로 제시하는 족도族圖가 있다. 겉장에는 상장돈장上章敦牂이라 쓴 글자를 표제처럼 삼는 이 족도는 화랑세기 등장 인물들간에 얼키고설킨 혈연 관계를 사진으로 제시하는 것과 같은 족보 형태로 제시한다. 그래서 족도族圖라 한다. 


이 《상장돈장上章敦牂》에는 무수한 이름이 등장한다. 현존 《화랑세기》 등장인물들을 중심으로, 그에서 보이지 않는 이름도 상당하다. 이를 나는 《화랑세기》와 세트로 본다. 그것은 다른 무엇보다 현존 《화랑세기》 모든 등장인물의 혈연관계가 이 족도에서 그대로 확인되는 까닭이다. 


선화善花라는 여인은 묘하다. 현존 《화랑세기》에는 보이지 않고, 《상장돈장》 족도에만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본래 《화랑세기》에 선화가 보이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그것은 다른 무엇보다 현재 우리한테 필사본 형태로 주어진 《화랑세기》는 훼손이 극심하며, 따라서, 그렇게 훼손된 부분들 어딘가에 선화가 등장할 가능성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 선화가 어떤 인물인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누구나 아는 이름이다. 신라 진평왕 딸로서, 백제 망나니 서동과 결혼하니, 훗날 서동이 백제왕이 되니, 덩달아 왕비가 되었다는 그 여인이다. 


한데 《상장돈장》 족도에는 문제의 선화가 나타난다. 이를 보면 선화는 신라 진평왕의 여러 후궁 중 한 명인 애리愛理라는 여인에게서 난 딸이다. 


후궁의 딸이니 선화는 서녀다. 적통 공주가 아니다.  조선시대 관념으로 보면 옹주다. 옹주가 이웃 나라 왕의 정부인으로 가겠는가? 볼짝없이 선화는 백제 무왕에게 던져진 후궁이었다. 


봉영사리기 뒷면.



한데 신통방통하게도 저 봉영사리가 발견되고, 그를 통해 백제 무왕한테 정비는 백제왕후 좌평 사탁적덕 녀百濟王后佐平舍乇積德女, 곧 백제왕후는 좌평 사탁적덕(사택적덕)의 딸로 드러났다.

선화공주가 사라지자 다들 멘붕이었지만, 미안하지만 나는 맞았다. 


암튼 이래도 《화랑세기》가 가짜니 어떻니 저떻니 함부로 입 놀릴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