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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원)공은 건원建元 14년(549)에 나서 건복建福 23년(606) 7월에 卒했다. 그때 미실美室 궁주宮主가 이상한 병에 걸려 여러 달 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공이 밤낮으로 옆에서 모셨다. 미실의 병을 자신이 대신하겠다고 밤에는 반드시 기도하였다. 마침내 그 병을 대신하였다. 미실이 일어나 슬퍼하며 자신의 속옷을 함께 넣어 장사를 지내며, ‘나 또한 오래지 않아 그대를 따라 하늘에 갈 것이다’고 하니 그때 나이 58세였다. (화랑세기 설화랑전)
설원랑薛原郎은 설화랑薛花郞이라고도 하며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도 모두 보인다. 그가 바로 원효의 직계 선조다.
삼국유사에는 신라 최초의 화랑이라는데 저 화랑세기가 발견됨으로써 그가 실제로는 7세 풍월주다. 다만 540년 제정된 화랑이 폐지되었다가 부활했을 적에 그 부활한 첫 풍월주가 바로 설원랑이다.
아울러 이를 통해 그의 상세한 행적 또한 밝혀졌거니와 무엇보다 생몰년이 549~606년으로 확실히 밝혀졌다.
그는 미실의 변함없는 충신이었다. 저 화랑세기를 통해 신라 장송의례 일단이 드러나거니와 미실이 그의 속곳을 넣었주었다는 대목이 그것이니 이는 말할 것도 없이 내가 너의 여자라는 징표였다.
저 장면 무심한 듯 하나 의미심장하다.
사랑을 하려거든 설원랑처럼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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