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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19일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가 공개한 영흥도선 출수 유물 중 황칠 저장 도기다. 저 안에 든 물품을 분석했더니 황칠로 나왔다.
조사단은 저 황칠을 도료로 추정했거니와 그럴 가능성도 없지는 않으나 약물일 가능성이 더 크다.
그건 저 포장품을 보면 약병으로 판단하는 까닭이다.
이런 황칠이 2006년 경주 첨성대 인근 신라시대 유적에서도 드러났거니와 것도 안료 혹은 물감이 아닌 약물이다.
모든 안료는 약물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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