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문화 이모저모

이사부異斯夫에 의한 우산국 정벌, 어찌 봐야 하는가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0. 12. 4.
반응형

1. 고려시대 여진 침투 기록에서 유추하는 신라시대 동해안 해로海老 

 

내가 연구사 검토할 때까지만 해도 이 대목이 집중 부각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어떠한지 모르나, 나는 언제나 말했듯이 신라 지증왕 시대 이사부異斯夫(일명 태종苔宗)에 의한 우산국于山國(지금의 울릉도) 정벌 비밀은 고려시대 여진족에서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고려시대 여진의 침투경로. 강릉과 경주지역을 집중 공략했다. 모조리 해로를 이용했다. 울릉도가 그 전진지기였을 가능성이 크다. 



고려시대 여진이 한반도를 침략하는 통로는 언제나 동해안 해로였다. 고려시대 동해안 피침탈 기사를 보면 언제나 여진은 배를 타고 나타났다가 배를 타고 사라진다. 그래서 그 지역 지방관 업적을 나열하는 데는 언제나 여진 적선 몇 척을 나포했다는 기록이 빠지지 않는다.

 

그들의 침투 지역에 주된 지역은 경주였다. 이들이 자주 찾은 곳은 경주였다. 그들이 경주를 침략하는 통로가 바로 해로다. 이는 역설적으로 신라시대 신라가 동해안을 진출한 비밀을 푸는 열쇠가 된다. 그것 역시 말할 것도 없이 해로였다. 육로를 통하는 어려움은 삼국유사가 수록한 김순정의 수로부인 관련 기사에서 명백하다.

 

울릉도



나아가 이는 왜 신라가 지증왕 시대에 우산국을 정벌해야 했는지를 설명한다. 이 무렵 신라는 동해안 경영에 주력하던 때였거니와, 그 주된 정벌 대상은 말할 것도 없이 물길이니 말갈이니 하는 종족과 그들이 구축한 정치체였다.

왜 우산국을 정벌해야 했는가? 우산국이 바로 그들의 침략 전진 기지였기 때문이다.

 

2. 우산국 정벌은 물길勿吉로부터의 탈취


나는 지증왕 이전 우산국 울릉도가 종족으로 보면 물길勿吉 땅이라고 본다. 물론 물길에다가 주로 지금의 강릉이나 삼척 동해 일대에서 들어간 한반도 도망민들도 주축이었을 수도 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사부에 의한 우산국 정벌 이전, 우산국에 지배적인 지배력을 행사한 정치체는 물길 말갈靺鞨이라 본다. 따라서 우산국 정벌은 물길로부터의 영역 탈취다. 

 

울릉도의 지정학적 위치 



3. 신라를 침투하는 말갈靺鞨

신라와 말갈 충돌을 주목한 연구는 산더미다. 멀리는 정약용이니, 그는 저 시대 말갈靺鞨이라는 표현이 등장할 수 없음을 들어 기록이 허구라는 방식을 취했으니, 이 방식이 의외로 지금까지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런 기록들은 거짓이 아니다. 저 말갈과의 치열한 전투는 바로 동해안을 둔 신라와 말갈의 쟁탈전이다. 그 대치 기록이 사라지는 시점이 신라가 그 영역을 장악한 시점이다.

 

울릉도 



바로 이 대치 국면 한복판에, 그리고 그 정점에, 그리고 그 종국점에 바로 우산국 정벌이 위치한다. 우산국 정벌은 그 대치를 끝낸 위대한 사건이다. 말갈을 신라와 동등한 위치의 고대국가로 올려놓아야 한다.

 

(2017. 12. 3)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