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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보문뜰로 기억하는데 설총묘라 하는 데다.
여타 저 시대 무덤이 거개 그렇듯 그의 무덤이라 하나 실제로 그런지는 알 수 없다.
인근에 진평왕릉이라 하는 거대 신라시대 봉토분이 있지마는 이 또한 그의 무덤인지 알 수가 없다.
2016년 4월, 신록이 무르익는 시즌 오세윤 작가랑 찾았을 때 오작이 찍었다.
이 계절이면 진평왕릉을 가야 한다.
어제를 묻기에 안성맞춤한 곳으로 보문뜰 만한 데가 없다.
그렇다고 그 어제들이 깡그리 지워지겠는가?
그래도 지워준다는 믿음을 주는 데다.
***
전 설총묘는 보문동 남촌마을(영양남씨 집성촌)에 있는데 이웃마을인 보문동 양지마을(여강이씨 집성촌이라 이촌마을이라고도 함)에 사는 한 노인 꿈에 설총이 현몽하여 여기가 나의 무덤이라고 하였다고 하며 이를 친분이 있었던 설씨 노인에게 이야기하였고 이후 설총의 후예로 자처하는 경주설씨와 순창설씨 양대문중에서 합심하여 저렇게 정비하였다고 함.
설총묘에 대한 문헌기록으로는 조선 중종 때 영의정을 지낸 정광필鄭光弼 글에 월토산月吐山 자좌子坐에 있다고 했으나 그 위치를 현재는 알 수 없음.
다만 월토산은 토함산을 토월산으로도 불렀으니 토함산이 아닐까 싶기도 함. 진평왕릉은 1730년대에 신라왕릉을 비정할 때 경주김씨 문중에서 진평왕릉으로 비정하였으나 지금은 대체로 신문왕릉일 것으로 이해하고 있음.(이상 추가는 경주시 문화재과장 출신 이채경에 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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