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5일 성균관에서 추석 차례상 간소화 표준안이라면서 제시한 차례상은 뭔가 부족하여 보충 설명하고자 합니다.
추석 차례를 제사라고 하지 않고, 차례 혹은 차사라고 한 것은 기제사와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설과 추석에는 조상님께 "예를 표현한다"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추석이라는 명절이 되었으니 조상님께 명절 인사를 드린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예부터 차례상은 송편 같은 시절음식이나 과일만 차리고 축문을 읽지 않고 술도 한잔만 올리는 정도로 마칩니다.
이를 무축단헌(無祝單獻)이라고 합니다. 성균관이 간소화를 제안한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간소하게 차렸던 것입니다.
추석 차례상이 기제사 이상 성대하게 차리게 된 원인은 3가지입니다.
하나는 언론입니다. 물론 간소화 기사도 있지만, 차례상을 기제사와 똑같이 차리는 것처럼 제사정차와 축문 쓰는 법을 안내하고 그림과 그래픽 사진으로 보도를 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걸 전문가 집단에서는 언론예법이라고 비꼬지요.
둘째는 산업화로 이촌향도가 이루어지면서 기제사를 부모형제가 함께 모여 지낼 수 없는 상황이 되니 설이나 추석에라도 함께 조상님에게 성대하게 음식을 올리고 후손이 함께 제사지내 보자는 보상 심리에서 나왔습니다.
셋째는 묘사가 성묘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통상 10월이면 제사음식을 싸가지고 조상님의 산소에서 성대하게 제사를 지낸 전통이 있었고, 유명 종가에서는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추석에 집에서 추석 차례와 묘사를 함께 지내고 산소에는 과일과 술만 가지고 성묘를 하는 것이 일반화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추석 차례상이 아니라 묘사까지 합쳐져서 성대할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전을 부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전이 반드시 제사음식은 아니기 때문에 이걸 대단한 제안처럼 이야기해서는 안 됩니다.
선조들은 늘 제사음식을 과하게 준비하지 말라고 하셨고, 특히 유밀과를 쓰지 못하게 한 것이죠. 제사음식은 가정형편에 맞게 준비하면 되지 자랑할 것도 내세울 것도 아닙니다.
또한 성균관에서 제시한 차례상차림은 표준이라고 하기엔 뭔가 부족합니다. 기제사에서는 제사 대상 조상 부부를 함께 모시는 합설合設과 대상 조상만 모시는 단설單設로 논란이 계속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인정상 합설한다는 예학자가 많았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명절차례는 기제사로 모시는 모든 조상을 모신다는 것입니다. 합설을 할 때 부부 제사상을 따로 차리는 각탁各卓과 한 상에 부부를 함께 모시는 공탁共卓(국조오례의에서도 언급)에 대한 논란도 있었는데, 오례의라는 국법과 경제적 이유를 들어 공탁을 많이 합니다. 제사음식 비용이 절반....
성군관에서 제시한 사진처럼 단설에 각탁으로 제사상을 차리면, 2대봉사를 하면 네 분이니 네 개 제사상, 4대봉사를 하면 8분이니 여덟개 제사상을 따로 차려야 한다는 건데...
집이 얼마나 넓어서 이렇게 차릴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조선시대 예학자들도 이런 문제점 때문에 사시제를 지낼 때는 공탁을 원칙으로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길어졌네요.
퇴계선생이 예법은 멀리 있고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고 상황에 맞출 것을 강조하신 글이 생각납니다.
도움이 되셨으면 합니다.
율곡연구원에서 계간으로 발간하는 [율곡] 최근호에 제사에 관한 신가정의례를 연재하고 있으니 참고해 주세요.
***
이상은 민속학 전공 김시덕 박사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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