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문화재청이 일본에서 고려나전국화넝쿨무늬합을 돌려받았다며, 기자들 불러다 놓고 대대적으로 선전 홍보했거니와, 그것이 갈 자리는 국립중앙박물관장이라 정재숙 문화재청장과 배기동 국립박물관장이 그 실제 작업을 주도하는 국외소재문화재단과 동석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이 고려나전칠기는 무엇보다 그 희귀성에서 가치를 인정받거니와, 그 가치를 설명하는데 오늘 문화재청 보도자료는 세밀가귀細密可貴 라는 말을 동원했다. 그 보도자료에서 있듯이 이 말을 다른 데서도 썼는지 알 순 없지만,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이라는 책을 출전으로 삼거니와, 12세기 남송에서 고려에 사신으로 다녀간 서긍이라는 사람의 고려 견문풍물기다.
약칭 고려도경이라 하는 이 책은 조심할 점이 있거니와, 그 내용은 그 자신이 직접 견문한 것과 다른 문헌들에서 주어다 뽑은 구절들이 뒤죽박죽이라는 점이거니와, 문제는 어느 것이 직접 관찰이며, 간접 채록이라는 사실을 알 수 없는 대목이 대부분이라는 점이 사람을 환장케 한다.
암튼 그 문제는 또 다른 장중한 접근을 요하거니와, 다름 아닌 저 세밀가귀細密可貴라는 말을 통해 한문법 특징을 풀기로 한다. 저 말을 일전에 리움이 2015년 특별전을 개최하면서 저걸 대문으로 내걸어 적어도 문화재업계에서는 친숙하게 되었거니와, 그에 즈음해 리움은 이렇게 내걸었다.
‘세밀가귀’는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 나오는 말로 중국 송나라의 사신 서긍(徐兢)이 고려의 나전을 보고 “세밀함이 뛰어나 가히 귀하다 할 수 있다”라 기록한 것이다. 이는 12세기 찬란했던 고려의 문화, 넓게는 한국미술의 역사에 이어져 온 ‘세밀함’, ‘섬세함’, ‘정교함’이라는 특징 전반에 적용될 수 있다.
저 말은 내 보기엔 한국고전번역원 번역을 따온 것인 바, 1994년 김동욱이 옮긴 고전번역원 번역본은
그 권 제23 잡속雜俗 2 토산土産 편에 보이는
地少金銀。而多銅。器用漆作。不甚工。而螺鈿之工。細密可貴。
라는 구절을 옮기기를
땅에 금은(金銀)이 적고 구리가 많이 난다. 그릇에 옷[漆] 칠하는 일은 그리 잘하지 못하지만 나전(螺鈿)일은 세밀하여 귀하다고 할 만하다.
이로써 보건대 역자는 '貴'를 형용사로 보아 '귀하다'라 번역했음을 엿본다.
오늘 문화재청 보도자료에서는 그 구절을 끌어다오면서 이르기를
고려 나전칠기는 고려 중기 송나라 사절로 고려에 왔던 서긍이 지은 ‘고려도경(高麗圖經, 1123년, 인종 1년)’에 ‘극히 정교하고(極精巧, 극정교)’, ‘솜씨가 세밀하여 가히 귀하다(細密可貴, 세밀가귀)’라는 찬사를 받는 등 고려청자, 고려불화와 함께 고려의 미의식을 대표하는 최고의 미술공예품으로 손꼽혀 왔다.
라고 옮겼으니, 역시 형용사로 봤음을 엿본다.
이 경우 '貴'는 품사론에서 말한다면 동사다. 可는 그 뒤에 오는 말을 동사로 만든다. 단순히 귀하다가 아니라, 귀하게 여긴다는 뜻이다. 따라서 저 구절은 고려 나전 기술 혹은 그 제품은 정교해서 귀하게 여길 만하다는 뜻이다.
영어도 마찬가지거니와 한문 또한 품사는 문장에서 정해진다. 김동욱 또한 형용사로 보려한 흔적 혹은 유혹이 아주 짙다.
可貴의 貴는 precious가 아니라 to regard sth(sb) as precious다.
품사는 문장 안에서 다른 품사와의 관계에서 정해진다는 이 평범한 법칙을 감안하면, 좀 더 정확한 옮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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