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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현장

소나무 숲 너머로 달 떠오른 월송정 by 신정일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3.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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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에 있는 관동팔경 중 가장 아래쪽에 있는 정자가 평해의 월송정越松亭이다. 월송정으로 들어가는 초입은 굵은 소나무들로 이루어져 운치가 있는데 이 소나무 숲을 성단송전城壇松田이라 하고, 이 솔밭에 평해·장수·창원 황씨 시조가 된 황낙黃洛을 기리는 비석인 황장군단비黃將軍壇碑가 있다.




중국 당나라 고종 때 학사였다는 황낙이 굴미봉 아래에서 살았는데, 그의 묘가 이 근처에 있었으므로 단을 쌓고 비를 세워 추모한다.

황장군단비 앞에는 황낙을 모신 사당 추원재追遠齋가 있다. 소나무 숲길을 한참을 따라가면 월송정이 나온다.

경북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 바닷가에 위치하며 관동팔경 중 하나인데 신증동국여지승람 제45권 강원도江原道 평해군平海郡 ‘누정樓亭’ 조에 실린 글은 다음과 같다.




월송정越松亭: 고을 동쪽 7 리에 있다. 푸른 소나무가 만 그루요, 흰 모래는 눈과 같다. 소나무 사이에는 개미도 다니지 않으며, 새들도 집을 짓지 않는다. 민간에서 전하여 오는 말이 신라 때 신선 술랑述郞 등이 여기서 놀고 쉬었다라 한다.
 

또는 영랑·술랑·남속·안양이라는 네 화랑이 울창한 소나무 숲의 경치가 빼어난 줄 모르고 지나쳤기 때문에 월송정이라 지어졌다고도 하고 어떤 사람은 중국 월나라의 산에 난 소나무를 배에 싣고 와서 심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비가 갠 후 맑게 떠오른 달빛이 소나무 그늘에 비칠 때가 가장 아름다운 풍취를 보여 준다고 해서 월송정月松亭이라고도 부르는 월송정이 처음 세워진 고려 때에는 경치를 감상하는 정자로서가 아니고 왜구의 침입을 살피는 망루로서 세워졌다.

그후 왜구의 침입이 잠잠해진 조선 중기 중종 때 반정공신으로 활약한 박원종朴元宗이 강원도 관찰사로 와서 이곳을 정자로 중건하였다. 월송정은 그 뒤부터 관동팔경중의 하나로 뭇사람 사랑을 한껏 받았다.


조선시대 성종 임금은 화가에게 명하여 조선 8도의 시정 가운데에서 가장 경치 좋은 곳들을 그려 올리라 하였다. 그때 화가가 함경도 영흥永興의 용흥각龍興閣과 이곳을 그려 올리자 용흥각의 버들과 부용이 좋기는 하나 경치로는 월송정만 못하다고 하였으며, 숙종과 정조 임금도 이곳을 돌아보고 시를 지어 아름다운 경치를 찬양하였다고 한다.

다른 수많은 시인 묵객도 시를 지어 찬양했는데, 고려 때 사람인 안축安軸은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일은 지나가고 사람은 옛 사람 아닌데, 물만 스스로 동쪽으로 흘러 천 년 간 남긴 자취 정자 소나무에 있네. 겨우사리 다정한 듯 서로 엉켰으니 아교풀로 붙인 듯 풀기 어렵고, 형제죽兄弟竹이 마음으로 친하니 좁쌀 방아 찧을 것이, 어느 선랑이 있어 함께 학을 구울까. 예전 놀던 곳 찾으니, 푸르른 옛날 모습 불현듯 부럽구나.



고려 때의 문장가 가정 이곡李穀은 이르기를
 
가을바람에 옛 자취 찾아 말머리 동쪽으로 돌리니, 울창한 정자 소나무 좋기도 하구나. 몇 해 동안이나 이 마음은 신선 지경 찾으려 했다. 천리 먼 길에 길 떠나려 양식을 방아 찧었네. 도끼의 액운이 없었으니. 한위漢魏를 지났고, 재목은 큰집 지을 수 있으니, 기룡蘷龍(순 임금의 충직한 신하)에도 비끼겠네. 난간을 의지하여 자연 침음沈吟하기 오래인데, 졸렬한 붓으로 만분의 일도 허용하기 어렵구나.

하면서 월송정 경치를 칭찬하였다.



 
선조 때에 영의정을 지낸 아계 이산해李山海가 유배를 와서 기문을 지었다.

월송정은 군청 소재지 동쪽 6~7리 지점에 있다. 그 이름은, 어떤 사람은 ”‘신선이 솔숲을 날아서 넘는다[飛仙越松]’는 뜻을 취한 것이다.“하고 어떤 사람은 ”월月자를 월越자로 쓴 것으로 성음이 같은 데서 생긴 착오이다.“ 하니 어느 것이 옳은지 알 수 없다. 그런데 내가 월月자를 버리고 월越자를 취한 것은 이 정자의 편액을 따른 것이다.

푸른 덮개 흰 비늘 솔이 우뚝우뚝 높이 치솟아 해안을 둘러싸고 있는 것은 몇 만 그루나 되는지 모르는데, 그 빽빽함이 참빗과 같고 그 곧기가 먹줄과 같아, 고개를 젖히면 하늘에 해가 보이지 않고, 다만 보이는 이 나무 아래 곱게 깔린 은銀 부스러기 옥가루와 같은 모래뿐이다. (중략)



정자 아래에는 한 줄기 물이 고로 흘러 바다 어귀와 통하며, 물 사이로 동쪽에는 모래 언덕이 휘감아 돌아 마치 묏부리와 같은 모양을 한다. 언덕에는 모두 해당화와 동청초冬靑草(겨우살이)뿐이며 그밖은 바다다. (중략)

아아, 이 정자가 세워진 이래로 이곳을 왕래한 길손이 그 얼마이며, 이곳을 유람한 문사文士가 그 얼마였으랴. 그 중에는 기생을 끼고 가무를 즐기면서 술에 취한 이들도 있고, 붓을 잡고 목을 놀려 경물景物을 대하고 비장하게 시를 읊조리며 떠날 줄을 모른 이들도 있을 것이며, 호산湖山의 즐거움에 자적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강호江湖의 근심에 애태운 이들도 있을 것이니, 즐거워한 이도 한 둘이 아니요, 근심한 이도 한둘이 아니다. 그런데 나 같은 자는 이들 중 어디에 속하는가.

왕래하고 유람하는 길손도 문사도 아니며, 바로 한 정자의 운연雲煙과 풍월을 독차지하여 주인이 된 자이다. 나를 주인으로 임명해 준 이는 누구인가, 하늘이며 조물주이다.




천지간에 만물은 크든 작든 저마다 분수가 있어 생겼다 사라지고 찼다가 기욺은 일월과 귀신도 면할 수가 없는 법인데, 하물며 산천이며, 하물며, 하물며 사람일까 보냐. 이 정자가 서 있는 곳이 당초에는 못이었는지 골짜기였는지 바다였는지 뭍이었는지 알 수 없는 일이거니와 종내에는 또 어떠한 곳이 될까.

또한 솔을 심은 이는 누구며 솔을 기른 이는 누구며, 그리고 훗날 솔에 도끼를 댈 이는 누구일까. 아니면 솔이 도끼를 맞기 전에 이 일대의 모래언덕과 함께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릴 것인가.

내 작디작은 일신一身은 흡사 천지 사이 하루살이요 창해에 떠 있는 좁쌀 한통 겪이니, 이 정자 좋아하고 아끼어 손[客]이 되고 주인이 되는 날이 그 얼마인지 알 수 없거니와, 정자와 시종과 성쇠는 마땅히 조물주에게 물어 보아야 할 것이다.

수많은 시인 묵객이 오간 월송정이 더위가 심해서 그런지 고요 속에 잠겨 있었다.

2023년 8월 9일

 

*** 

 

신정일 선생 글을 군데군데 교감해서 전재한다. 하도 현장에서 마구잡이로 긁어다가 싸지르는 바람에 교정할 대목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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