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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송진 채취, 일제 강탈의 만들어진 신화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9.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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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첨부 사진 석장을 해설한다.

애초 대신역에 있다가 2002년 김천역 앞 광장으로 이전 식수한 수령 130년 추정 소나무이니 두번째 사진은 그 설명문이다.

보다시피 둥치에는 생채기가 나 있는데 태평양전쟁기 때 송진 채취 흔적이라 한다. 

이 소나무가 수령 130년이라면 70년전 일제시대 송진 송출 당시 나이는 60살...

60살 된 소나무 송진을 뺀다? 너무 젊지 않나? 

과연 왜놈 시대에 송진을 뺀 상처일까? 



바로 앞 두 사진은 선산 도리사 인근 고송古松이다.

이들 소나무 공통점이라면 역시 송진 채취 상흔이 완연하다는 점이다.

저런 소나무는 고찰 인근 소나무 숲에선 흔히 본다. 



앞 사진 석장은 하동 쌍계사 뒷산 고목인데 역시 같은 상처가 곳곳에서 발견된다.

그런 상처들이 태평양전쟁시대 일제의 강압적 한반도 수탈의 증언자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저리 채취한 송진을 각종 전쟁물자 연료로 썼다는 것이다. 


맞는 말인가?


그렇다면 아래 주왕산국립공원 입구에 선 안내판은 무슨 개뼉다귀란 말인가? 



이 설명문을 보면, 송진 집중 채취가 이뤄진 시기는 일제시대와는 하등 연관이 없고 박정희시대인 1960년대 중반이다. 

불과 60년 전이다. 


내가 하도 일제 송진 강탈 운운하는 설명이 앞뒤가 맞지 않는 구석이 많은 듯 해서 그 연원을 추적한 적이 있다.

그 이유는 저런 상처가 난 소나무 대부분이 수령 백년이 안 되어 보이거나 그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태평양전쟁은 지금으로부터 물경 70년전이다. 그때 저들 소나무는 송진을 채취할 만한 체구가 아니되었다.

이 점이 수상쩍기 짝이 없었다.

주변 사람들 도움을 받아 분석한 결과 일제시대 강탈설이 완전히 틀린 것도  아니지만 대부분이 틀렸음을 확인했다.

태평양전쟁기에 송진 채취가 문제가 된 당시 신문기사가 발견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저들 송진채취가 대량으로 일어난 때는 뜻밖에도 60-70년대였다는 사실이다.

너무나 많은 거짓이 판을 친다.


아래 사진 봐라! 

이게 70년 전에 난 상처란 말인가? 

아무리 일본이 싫다 해도 그렇지 하지 않은 일까지 죄를 뒤집어 씌운단 말인가? 

이와 똑같은 일이 쇠말뚝이다. 일본넘들이 민족정기를 말살하고자 혈이 통하는 곳곳에다가 쇠말뚝을 꽂았다는 것이다. 

이 역시 말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다. 

일본넘들이 할 일이 없어 쇠말뚝이나 꽂고 다녔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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