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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THESIS

창녕 교동송현동고분 63호분 발굴성과 요점 정리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0. 1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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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무덤은 신라시대 신라사람이 남긴 것이다.

금동관은 완전히 신라식이며 기타 역시 마찬가지다. 뒤에 볼 쌍분雙墳이란 형식도 마찬가지다.

 

금동관. 얼굴가리개인데 얼굴 피부와 닿는 부분에다가는 직물을 댔다. 멱목幎目이다. 


물론 이른바 현지 전통이 많이 가미했다. 동시대 경주 중심 중앙 지배층에서는 적석목곽분이 대세지만 이곳은 석실분이다. 그 석실은 가야문화권에서는 일반적인 길쭉이 세장방형이다.

적석목곽분은 동서 장축에 머리는 동쪽에 두지만 여긴 남북 장축에 머리는 남쪽에 뒀다.

 

가야지역 무덤 특징을 보이는 긴네모꼴 무덤방



2. 무덤을 만든 시기는 지증왕 2년(503) 이전이다.

 

순장자가 있다는 것은 이를 만든 시점이 지증왕 이전임을 뜻한다. 


신라는 저때 순장을 금지했다. 따라서 순장이 드러난 이 무덤은 그 전에 등장해야 한다. 조사단에서는 5세기말~6세기초 라는 시점을 제시했지만 앞당겨야 한다. 소지왕 혹은 자비왕 무렵이다.

3. 39호분과는 쌍둥이다. 39호분 봉분 일부를 침범하면서 만들었으니 63호분이 늦게 들어섰다.

 

 

먼저 만든 39호분을 파고 들어간 63호분. 

 

따라서 이 두 고분은 밀접한 연관성을 지닌다. 부부일 수도 있고, 부자일 수도 있으며, 모녀일 수도 있다. 

4. 63호분 주인공은 성별로는 여성이다.

 

이 정도 무덤을 만들 남자라면 으레 보이는 큰칼이 없다. 대신 은장도류 작은 칼만 허리춤에서 나온다. 여성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39호분은 그 남편이다. 39호분이 규모가 더 큰 까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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