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할아버지는 타하르카이고 나의 할머니는 칸다카다!"
(My grandfater is Taharqa, my grandmother is a kandaka!)
크리스틴 로미(Kristin Romey), “새로운 수단을 그리다"(Sudan’s Reckoning), 내셔널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 2022년 2월호, 117쪽
수단 내전이 격화하는 모양새입니다. 우리나라 정부도 수단에 체류 중인 교민 대피를 지원하기 위해 공군기와 육군 특전사령부 소속 대태러 부대를 현지로 급파하는 한편, 오만에 정박 중이던 청해부대를 수단 인근 해역으로 이동시키는 조치를 취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2023년 4월 15일부터 발생한 수단 군벌 간 무력 충돌은 압델 파타 알-부르한(Abdel Fattah al Burhan: 1960년-현재) 장군이 이끄는 “정부군”과 준군사조직인 신속지원군(RSF) 수장인 모하메드 함단 다갈로(Mohamed Hamdan Dagalo: 1973년-현재)의 세력이 권력과 자원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발생했습니다.
2019년 4월 오마르 알-바시르(Omar Hassan Ahmed al Bashir: 1944년-현재) 대통령이 축출된 후 군부는 2021년 10월까지 국정을 민간에 이양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 언제나 그렇듯이 – 군부는 정권 이양 일주일을 앞두고 “과도 정부 주권 위원회”라는 것을 세워 권력을 차지해버렸습니다.
그런데 지난 2019년 봄 30년 간 잔혹한 독재정치를 일삼았던 바시르 정권에 대항하여 비폭력 시위를 벌이던 수단의 젊은이들이 외치던 구호가 바로 제가 앞서 인용한, “나의 할아버지는 타하르카이고 나의 할머니는 칸다카다(My grandfater is Taharqa, my grandmother is a kandaka!)”였습니다.
제3 중간기에 속하는 제25 왕조 타하르카(Taharqa: 기원전 690-664년)는 약 100년 간 이집트를 지배한 누비아 Nubia 출신 파라오 중 한 명입니다.
칸다카(kandaka)는 고대 수단을 지배한 쿠쉬 왕국(Kingdom of Kush) 왕비를 지칭하는 호칭입니다. 수단 젊은이들은 고대 누비아 역사에서 긍지와 정체성을 찾으려 한 것입니다.
오늘날의 수단 북부에 해당하는 누비아는 황금광산이 풍부한 “황금의 땅”으로서 고대 이집트인들에게는 개발과 정복의 대상이었습니다.
특히 신왕국시대(1550-1069년)에 들어서면서 누비아에 대한 이집트의 영향력은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강력한 패권국가로 부상한 신왕국시대 파라오들은 누비아 북부 제4 급류의 제벨 바르칼(Gebel Barkal) 지역까지 이집트의 통제 아래 두었으며 누비아 곳곳에 요새와 도시, 그리고 신전을 건립했습니다.
특히 제18 왕조 투트모세 3세(Thutmose III: 기원전 1479-1425년) 치세에는 메로에(Meroë)가 위치한 제5 급류까지 진출했습니다.
신왕국시대 파라오들은 또한 직접 임명한 누비아 총독(Viceroy of Kush)으로 하여금 누비아를 다스리게 했으며 이집트의 종교와 문화를 이식함으로써 누비아 인에 대한 대대적인 동화작업을 전개했습니다.
그러나 누비아 인들이 이집트에 완전히 동화되고 복속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이집트의 지배력이 약해질 때마다 자신들의 왕국을 건설했습니다.
역사상 가장 주목할 만한 고대 누비아 정치세력은 고왕국시대 말기부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제3 급류 근처 케르마(Kerma) 지역의 쿠쉬 왕국이었습니다.
더구나 신왕국 시대가 끝난 후 찾아온 혼란기, 즉 제 3 중간기(기원전 1069-664년)에 접어들었을 때 분열된 이집트를 다시 통일한 세력이 바로 다름아닌 이 쿠쉬 왕국이었습니다.
이집트학자들은 누비아의 파라오가 이집트를 다스린 이 시기를 앞서 언급한 제25 왕조(기원전 747-656년)로 분류합니다.
제25 왕조의 지배는 아시리아가 이집트를 침공하면서 끝나게 되는데 이후 누비아는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이집트를 침공한 외부 세력과 손잡기도 하고 이집트 토착 세력과 동맹하기도 했습니다.
다시 현대로 돌아와서, “황금의 땅”답게 오늘날에도 수단의 금 생산량은 연간 50톤에 달하는데 신속지원군은 자신들의 근거지인 서북단 다르푸르(Darfur) 지역의 금광 세 곳을 장악하고 있으며 금을 밀매하여 벌어들인 수익으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러시아의 악명 높은 용병집단인 바그너 그룹(PMC Wagner Group)까지 가세해 신속지원군을 지원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만일 군벌 간 무력충돌이 장기화하면서 수단이 시리아와 같은 내전에 휩싸이게 된다면 그 여파는 이집트뿐만 아니라 차드(Chad)와 리비아(Libya)에까지 미치게 될 것입니다.
이집트의 경우, 수단이 나일 강의 강줄기 중간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내전이 장기화한다면 향후 수자원을 확보하는 데 상당한 곤란을 겪을 수 있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이집트 정부는 2011년부터 에티오피아가 청나일에 건설 중인 그랜드 에티오피아 르네상스 댐(Grand Ethiopian Renaissance Dam)에 대한 우려를 감추지 않고 있습니다.
수단 국경에서 동쪽으로 약 15킬로미터 떨어진 이 댐이 완공될 경우 수단과 에티오피아에서는 치수를 통한 관개농업이나 전력생산과 같은 다양한 경제적 실익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하지만 전체 면적이 1,800평방 킬로미터로 서울시 3배 규모인 이 댐이 만수위에 달할 때까지 5-15년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이집트 정부는 이 기간 동안 나세르 호(Lake Nasser)로 유입되는 물의 양이 급감하여 농업용수 공급과 전력생산에 큰 차질이 생길까 노심초사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수단 내전으로 인해 400명 이상이 사망하고 3,500여 명이 부상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만 명의 주민들이 이웃나라인 차드로 피신했다고 합니다.
사실 수단 북부에는 비록 그 크기는 작습니다만 이집트 본토보다 더 많은 피라미드가 있습니다.
제25 왕조 이후 수단의 왕들과 왕비들을 위해 건설된 이들 피라미드는 제벨 바르칼 근처의 엘-쿠르(el-Kurr), 누리(Nuri), 메로에 등과 같은 고대 왕실 집단묘역에 산재해 있습니다.
인명 피해와 이재민도 큰 문제지만 수천 년 전 고대 유적이 이번 내전으로 파괴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관련 기사:
https://www.nationalgeographic.com/magazine/article/facing-an-uncertain-future-sudan-is-drawing-strength-from-its-ancient-past-feature?fbclid=IwAR0hdEjQuKuv_VrkdqLMz_pPHBHN-BoeZcNyoBBl7YVQhhaiYOrdGq01oh8
#수단_내전 #누비아 #타하르카 #제벨_바르칼 #메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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