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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소개한 적 있는 이순신의 북방 전투를 그린 수책거적도守柵拒敵圖다.
이 수책거적도를 다시 보면,
이 그림 주인공은 여진족도, 이를 방어하는 조선군도 아니고
바로 뒤편에서 오돌오돌 떨고 있는 조선의 농부다.
성채 바깥에 펼쳐진 밭인지 논인지
이는 보는 시각에 따라 병사에게 식량을 공급하는 둔전일 수도 있겠지만
병사가 이 농민을 보호하기 위해 파견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구한말에는 심지어는 이런 군대의 보호없이도 농민들이 두만강을 넘어
청의 봉금封禁 지역으로 몰래 들어가 농사를 지었다.
농부는 땅을 갈아 먹고 살 수 있다면 어디든 간다.
고려시대 후기 오면서 이 땅에서 마침내 혼합농경이 안정적으로 경영되기 시작했다는 것이고,
그 결과가 북방 사민의 성공인데,
여기서 병사의 전투와 정치적 포석은
사실 이 북방 사민의 주요장면이 아니며,
북방으로 농사 지으러 들어가 마침내 성공하기 시작한 농민들이 북방사민의 주인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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