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探古의 일필휘지

술꾼의 술병 예찬에서 뽑아낸 세 가지 이야기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3. 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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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꾼의 술병 예찬 속에서 뽑아낸 세 가지 이야기>

술병이여 술병이여 / 壺兮壺兮。
술을 채우니 한 말 두 되라 / 盛酒斗二。
따르고는 다시 채우니 / 傾則復盛。
어느 땐들 취하지 않으랴 / 何時不醉。
나의 몸을 높이고 / 兀我之身。
나의 뜻을 활달하게 한다 / 豁予之意。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니 / 或舞或歌。
다 네가 시킨 것이로다 / 皆汝所使。
내가 너를 따르는 것은 / 隨爾者予。
다만 다하지 않기 때문이라 / 但不竭耳。
- <동국이상국집> 후집 권11, 찬贊, "술병명酒壺銘"


1) 백운거사가 좀 과하게 술을 마시면 춤추고 노래부르는 것이 버릇이었던가 보다. 다행스럽게도 옷은 안 벗은 모양.

2) 두이斗二를 기존 번역은 '두 말'이라고 풀었다. 고려시대의 한 말[斗]을 지금 식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

<고려도경>에서 고려 도량형이 송나라 도량형과 같다고 한 걸 믿고 환산해보면 대략 6.7L 정도가 된다. 그렇다고 할 떄, 아무래도 13.4리터들이 술병이라면 너무 크다.

<고려도경>을 보면 고려 사람들이 쓰던 물항아리[水甖]와 술항아리[酒尊]의 용량이 '1말 2되[一斗二升]'라고 나온다. 8.04L 정도니 좀 묵직하겠지만 이 정도면 (좀 무리해서) 들고 마실 만은 했을 게다.

그러고 보니 그림에서는 좀 작게 그려진 것도 같지만, 우리의 백운거사께서 과장법을 썼을 수도 있는 일이니까.

3) 도량형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바다에 가라앉은 배에서 나온 고려시대 항아리 용량을 재어보면 대체로 18L, 10L, 4L 이 세 가지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도기소陶器所에서 항아리 크기를 관리하지 않으면 나오기 힘든 일이다. 그런데 또 크게 찌그러진 항아리임에도 그 안에 젓갈을 담아 배에 실은 사례가 확인된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가마에서 나온 항아리가 우그러졌으면 장인이 "이건 아니야!"하고 깨어버릴 것 같은데, 고려 사람들은 그러질 않았던 것이다.

생김새가 어떠하건, 쓸 수만 있으면 그들은 꺼리지 않고 그걸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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