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수선설養水仙說>
제주라는 고장에는 예부터 수선화가 많이 자라난다. 오래 전 제주 사람들은 이를 천히 여겨 말이나 먹는다 하였으나, 서울 사람들이 그 자태를 사모하여 즐겨 완상하였다.
세 꽃잎과 세 꽃받침이 노란 꽃술을 받친 모습을 일러 금잔옥대金盞玉臺라 하니 꽃대가 올라와 망울을 틔우면 아름답기 그지없으나, 돌틈 아무곳에서나 흔히 자라고 피어나며 먹을 수도 없으니 천히 여긴 것이다.
내가 이곳에 내려와 수선화를 길러 보고자 하였다. 완당阮堂을 흉내내고 싶어서였달까. 그리 비싸지 않은 값에 구근 몇 촉을 구했다. 몇은 바깥에 심고 몇은 화분에 심어 안에 두었다.
화분에 심은 수선에는 물을 주고 햇빛을 쬐어가며 나름 정성을 들였고, 바깥에 심은 수선에는 밑거름과 물을 살짝 주었을 뿐 별 조치를 하지 않았다. 며칠이나 지났을까, 바깥에 심은 것은 그리 자라지 않았는데 안에 둔 것은 키가 쑥 컸다.
이상타 싶었지만, 며칠 사이에 별 일이야 있겠는가 싶어 두고 보니 이것이 이른바 웃자람이었다. 길게는 자라되 이파리 속이 옹골차지 못해 축 처져 난초처럼 휘어지더니 끝내는 중간이 뚝 꺾였다.
내 이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으나 무심코 넘긴 것을 한탄하며, 웃자란 것을 수습해 비오는 날 바깥에 심어보았다. 한동안은 그럭저럭 자라는듯 싶더니, 바람에 그 긴 잎이 나부끼고 눈에 파묻혀 비실비실하였다.
그래도 죽지 않는 것이 용한데, 처음부터 바깥에 심었던 것과 견주어보니 같은 종자라는 게 믿기지 않을 지경이었다.
아아! 수선화를 기름이 이와 같을진대 다른 것을 기름은 또 어떠하겠는가? 혹 어떤 것을 자라게 돕는다 이르고서 하는 일이 조장助長의 폐가 되지는 않을 것인가?
실수를 돌이키려 행하는 일이 그것에 더 큰 상처를 주지는 않을 것인가?
이에 <양수선설>을 짓는다.
- 倣 白雲居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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