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쓸쓸하니 찬 샘물 솟나 싶더만 / 瑟瑟初疑瀉泠泉
도리어 자욱하니 저녁 연기 나는 듯 / 濛濛還似起昏煙
산 속에 들어앉아 섣달 보내는 고승은 / 高僧坐度山中臘
나물 삶고 차 달일 제 불 필요 없으리 / 煮菜嘗茶不火煎
물 솟는 곳에 유황 있다는 말 믿지 않고 / 未信硫黃浸水源
되레 양곡에서 아침 해가 목욕하던가 싶었지 / 却疑暘谷浴朝暾
다행히 외진 곳이라 양귀비가 오지 않았으니 / 地偏幸免楊妃汙
지나는 길손 잠깐 씻어본들 뭐 어떠하리 / 過客何妨暫試溫
온천溫泉 밑에 욕탕지(목욕할 수 있게 만든 둠벙)가 있으므로 목욕은 반드시 여기서 하게 된다.
-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12, 고율시, "박인석朴仁碩 공과 동래東萊 욕탕지浴湯池로 떠나려 하면서 입으로 부르다 2수 同朴公將向東萊浴湯池口占 二首"
이규보가 경주 민란을 진압하는 데 끼어 종군하던 당시에도 부산 동래온천이 퍽 유명했던가 보다. 하기야 <삼국유사>에도 나올 정도라니 말이다.
난을 진압하고 얼추 뒷정리가 된 시점이었는지, 이규보는 같이 종군한 박인석(1144~1212)과 동래를 다녀올 짬을 냈다.
목욕을 즐긴 고려 사람답게, 말 타고 온천여행을 떠나며 흥이 돋은 규보 아저씨 입에서 시 두 수가 절로 나온다.
그 시절엔 동래온천이 유황온천이란 얘기가 돈 모양인데, 그는 이를 믿지 않았다.
대신 해가 뜨는 양곡暘谷에서 해가 몸을 씻었기에 물이 뜨끈뜨끈하지 않은가 하는 썰을 내세웠다.
과학이 발달한 요즘은 동래온천의 수질이 "알칼리성 약식염천의 국내 최대 마그네슘 함유 온천"으로 밝혀졌으니, 어떻거나 백운거사가 결론은 맞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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