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 이전 근대적 사유가 조선에 이미 있었다는 주장은
따지고 보면 시장경제의 맹아가 이미 조선 후기에 싹터 올라오고 있었다는 주장만큼이나
식민사관 타파를 간판으로 내건 한국사학에 있어 중요한 사명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필자 생각은 이렇다.
조선이 만약 개항 이전에 제대로 된 근대적 사유,
아니 그 싹이라도 제대로 만들어져 있는 상황이었으면
한국은 일본 식민지가 되었을 리가 없다.
어떻게든 식민지화를 피해 근대화의 길로 갔을 것이라는 말이다.
한국인과 한국사는 그 정도의 역량은 있다는 것을
해방 이후 70년 역사가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은 더 왈가왈부할 필요도 없다.
조선은 개항 이전 그 최소한의 근대적 사유도 없었기 때문에
19세기 말 부랴부랴 근대도 아니고 전통도 아닌
왕조를 엎기는 엎어야겠는데
함량 미달의 동학으로 무장하고
혁명군이 손발은 있되 머리는 없는 모습으로 왕조 타도를 위해 나선 것 아니겠는가.
한국에 제대로 된 근대적 사유가 발생하여 꽃을 피우기 시작하고 있었다면
뭐가 답답해서 동학을 들고 나와 혁명을 시도했겠는가.
그보다 더 빡세고 폼나는 프랑스 혁명 미국혁명이
이미 동학 100여 년 전에 있었는데 말이다.
조선후기 사상사에서
근대적 사유, 근대적 맹아라는 말은 그래서 쉽게 붙여서는 안된다.
필자가 보기엔 조선후기 실학자 그리고 다산이 근대적 사유를 했다면
동시기 에도시대의 저쪽 지식인들은 도대체 뭐라고 불러야 하겠는가?
그 정도는 되야 근대적 사유라고 이야기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조선후기-.
개항 이전.
안타깝지만 우리나라에는 근대적 사유가 없었다.
있었다면 식민지에서 벗어나 자주적 근대화의 길을 걸어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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