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고 김태식 / 2014.02.05 18:33:18 배부일시 2014.02.06 07: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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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바고 1차 : 2014.02.06 07:01:00
<조선시대 '좀 놀아본 오빠'의 적나라한 시대 기록>
심노숭 '자저실기' 완역판 출간
(서울=연합뉴스) 임기창 기자 = '몸은 깡마르고 허약하며, 키는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작다. 등은 구부정하게 불룩 솟았고, 배는 펑퍼짐하게 아래로 처졌다. 어려서는 옷을 가누지 못할 만큼 허약해서 혼담을 하러 온 사람이 내 모습을 보고 혼사를 물렸다. 요절할 관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글쓴이 자신을 시쳇말로 '찌질하게' 묘사한 이 글은 요즘 어느 블로그나 페이스북에서 발견했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법하다. 그러나 이 글은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전반, 그러니까 조선 후기 어느 양반 가문 선비가 썼다.
글쓴이는 효전孝田 심노숭沈魯崇(1762~1837). 효종 때 영의정을 지낸 심지원沈之源의 7대 종손이다. 아버지는 문과 장원급제자 출신으로 영·정조 시대 노론老論 시파時派의 핵심 인물인 심낙수沈樂洙(1739~1799)다. 심노숭 자신은 중앙 정계에서는 별로 활동하지 못했으나 상당한 명문가 자제임은 틀림없다.
위에 인용한 글은 그의 저서 '자저실기自著實紀'에 실린 '나의 몸'이다. 자저실기란 '자신이 직접 쓴 실상의 기록'이란 뜻이다. 자신에 대해서든 정치나 예술에 관해서든 말 그대로 '실상'을 드러낸 것은 맞다. 다만 품격 높은 '엘리트 집안' 출신 선비가 썼다기에는 글들이 한결같이 너무도 솔직하고 적나라하다.
이 책은 자신이 겪거나 보고 들은 것을 빠짐없이 기록해야만 직성이 풀렸다는 심노숭의 '글쓰기 병'의 산물이다. 당대 지식인 사회와 정치판의 어두운 모습을 '있는 그대로' 기록했다는 점에서 그 시대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그가 기록한 정치와 사회의 풍경에서는 오늘날과 묘한 연속성이 느껴진다.
이를테면 '기생집 출입'이라는 글에서 심노숭은 자신이 10대 중반부터 30대 중반까지 "미친 듯 방종해 하마터면 패가망신할 지경"이었고, 기생들과 놀 때 좁은 골목이나 개구멍도 가리지 않아 숱한 비웃음을 샀다고 털어놓는다. 오늘날로 치면 유흥업소를 뻔질나게 드나드는 일부 상류층 '좀 놀아본 오빠'인 셈이다.
당파와 생각이 다른 이들과 타협할 줄 모르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온갖 간계를 부리는 정치권에 대한 신랄한 비판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심노숭은 객관적 기록자라기보다는 자신이 속한 노론 시파의 시각에서 당시 권력을 농단한 벽파 정객들의 행태를 한 장면씩 마치 생생한 삽화처럼 묘사한다.
그런 시선 속에는 회의실에 들어가서도 상대방이 꼴 보기 싫어 병풍을 치고 앉는 각 당파 영수급 인물들의 모습부터 홍국영, 김종수, 심환지, 김귀주 등 당대를 손아귀에서 주무른 정객들이 술자리에서 보인 추태나 정치적 술책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군상이 담겼다. 인신공격에 가까운 노골적 폭로도 적지 않다.
책에 실린 글은 일부 미담성 사연을 빼면 대부분 시대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는 내용인데, 당시 양반 사회의 자화상에 관한 기록도 그와 맥을 같이한다.
'일찍이 제사 때가 되어 떡을 쪘는데, 계집종이 단속하지 않아 개가 떡을 먹어버렸다. 그러자 계집종의 위아래 옷을 벗기고 개와 함께 기둥에 묶고서 개를 매질했다. 개가 성을 내며 계집종을 물어뜯어 살점이 거의 남아나지 않았다. 그의 잔혹함이 이와 같았다.'('이심도의 잔인한 짓' 중에서)
'자저실기' 완역을 주도한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가 숱한 단절의 역사를 반복하고 있으나 여전히 단절되지 않은 문화가 많다"며 "우리의 상류층 사회, 지식인 사회의 고질적 병폐가 시대상으로는 단절됐지만 의식과 행동으로는 잠재돼 있다는 점이 번역하면서 자주 머리를 스쳤다"고 말했다.
휴머니스트. 764쪽. 3만2천원.
(끝)
***
이 기사가 임기창 기자 이름으로 되어 있지만, 아마 초고는 내가 썼을 것이다. 내가 기사를 송고해야 했으므로, 저리했을 것이다.
강민경 군이 심노숭이 증언하는 제주 갑부 김만덕 이야기를 꺼냈기에 생각나서 검색해 전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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