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 1890~1957)은 최헌규(崔獻圭)의 6남매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형은 창선(昌善), 국무총리와 대한적십자사 총재를 지낸 두선(斗善)은 동생이다. 여형제로는 손위 누이가 둘, 여동생이 하나 있었다.
육당 집안은 제법 부유하였다. 관상감(觀象監)에서 근무하며 한약방을 경영한 그의 부친 최헌규는 중국과의 한약재 무역과 농사 달력 판매로 큰돈을 벌었다. 육당이 출판업을 시작한 것은 부친의 재력 덕분이었다.
육당은 12세 때인 1901년 4월 현정운(玄晶運)의 6녀와 결혼하였다. 슬하에 2녀 4남을 두었는데, 이들의 생몰 연월 및 신상은 아래와 같다. 육당의 세 아들 이름의 끝자(인-웅-검)는 환인-환웅-한배검에서 따온 듯 하다.
- 장녀 한옥(漢玉) : 1909년 5월생 (1950년 6.25 때 피살)
- 장남 한인(漢因) : 1915년 6월생 (1952년 7월 병사)
- 차남 한웅(漢雄) : 1917년 9월생 (2002년 12월 사망)
- 삼남 한검(漢儉) : 1922년 11월생 (6.25 때 월북, 생사불명)
- 차녀 한기(漢奇) : 1924년 11월생 (1928년 11월 사망)
- 사남 한혁(漢赫) : 1939년 12월생 (2018년 당시 생존)
6.25 전쟁으로 육당의 집안은 인적, 물적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장녀 한옥(漢玉)은 인민군에게 피살되었고, 사위 강건하(姜乾夏)는 북으로 피랍되었다. 삼남 한검(漢儉)은 월북하였다. 또 육당의 장서 17만 권이 전쟁통에 불타고 말았다.
= 장남 한인(漢因)은 경성(京城)제국대학 출신으로 6.25 당시 서울대 의대 교수로 있었다. 적 치하에서 의용군에 징집된 것이 문제가 돼 9.28 서울 수복 후 그의 아내가 경찰서에 붙들려가 고문을 받았다고 한다. 한인은 전쟁 중이던 1952년 7월 병으로 사망했다.
(* 한인의 장남 학주는 1964년 서울공대 졸업 후 도미하여 제약회사에 근무하였는데, 2011년 <나의 할아버지 육당 최남선>이라는 책을 펴냈다)
= 삼남 한검(漢儉)은 도쿄(東京)제국대학 법학부 출신으로 좌익 진영에 가담해 활동하다가 여러 차례 투옥되었다. 6.25 발발 초기 한검은 서울시 인민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는데, 전쟁 중에 월북해 북에서 활동하였다. 한검은 부친의 친일 행적 때문에 북에서 곤욕을 치렀다고 한다.
= 차남 한웅(漢雄)은 사실상 장남 노릇을 했다. 장남 한인과 같은 경성제국대학 출신에 의사로 활동했다. 한웅은 국내 소아감염학계의 권위자로 불렸으며, 육당이 경영 하다가 폐업한 ‘동명사’를 다시 열어 이공계 서적 출판에 힘썼다.
(* 한웅의 장남 국주는 피부과 의사로 활동하였으며, 1991년 이후부터 동명사 경영을 계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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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인-한웅-한검 3형제의 소싯적 흔적이 남아 있는 자료 몇 점을 소개하니 첨부자료들이 그것이다.
*** 이상은 정운현 형 글인데 업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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