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探古의 일필휘지

심동주, 한국근대미술사가 주목해야 하는 인물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4.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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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누구기에 이런 대를 쳤는가>

윤동주(1917~1945)는 알아도 '심동주'는 아마 대부분 모를 것이다.

하지만 근대 한국미술사를 봤다면 한 번쯤은 스친 이름이기도 할 것이다.

동주東洲는 호고 이름은 인섭寅燮, 곧 동주 심인섭(1875~1939)이 바로 그다.

1875년 을해생이니 관재 이도영(1884~1933), 이당 김은호(1892~1979)보다 선배인데, 희한하게 대중에겐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설명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근대기 서화가로 호는 동주(東洲), 본관은 청송이다. 일찍이 일본·중국 상해 등지를 왕래했다.

1921년 서화협회 회원이었으며, 1922년과 1923년에는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했다.

그림과 글씨에 능했으며, 특히 묵죽, 묵난 등을 잘 그렸다.

1921년 서화협회전이 생기면서 서화협회 정회원이 되었다.

서화협회전 출품과 동시에 이듬해 조선미술전람회 동양화부에 「묵죽(墨竹)」과 「묵란(墨蘭)」을 출품하여 입선하였으며 1923년에는 「배월낭간(拜月琅玕)」으로 입선했다.

같은 해, 제3회 서화협회전에 작품을 출품하였다.

1927년 10월 2일부터 6일까지 평양 평남 상품진열관에서 제2회 삭성회 전람회가 열렸다.

이 전시회에 심인섭은 이상범, 고희동, 이용우, 지운영, 양기훈, 김규진 등과 함께 수묵채색화 분야에 출품하였다.

1939년 별세하기까지 조선미술전람회보다 서화협회전에 더 많은 출품을 하였으며, 채색화보다는 글씨와 화조, 사군자를 잘 그렸다.

북한의 조선미술박물관에도 그의 작품 「대」, 「바위와 란」, 「란」 등 여러 점이 소장되어 있다.


서화협회 회원이었고 조선미술전람회에 2회 입선하였다면, 당시 조선의 어지간한 서화가들이 걸었던(또는 걷고자 했던) 길의 전형이다.

그 길을 걸었기에 후학의 눈에 덜 뜨인 것일까.

지금까지 그의 작품을 서너 번 보았는데, 산수건 대나무건 큰 특징을 느끼지 못했었다.

그러다 이 대나무 반절을 만났다.

깨끗한 종이 위에 어린 대나무 네 줄기를 세웠는데 청신淸新한 기운이 가득하다.

해강 김규진(1868~1933) 류의 발랄한 호쾌함도 아니고 일주 김진우(1883~1950)의 서릿발 같은 묵중함도 아니다.

가볍게 친 듯 하지만, 어딘가 내공 서린 당당함이 느껴진다.

근대 서화가 사이에 한때 유행한 하소기(1799~1873) 필치의 화제도 적재적소, 잘 어울린다.

혹시나 이 작가를 연구한 논문이나 저술이 있는지 틈틈이 찾아봐야겠다.

玉立蕭蕭竹數竿
옥이 서 있는가, 쓸쓸히 대 몇 그루​ 돋아났는데

風枝露葉帶淸寒
바람 이는 가지에 이슬 맺힌 잎 맑고 차가움 띠었네​

昔年湖曲人家見
옛날에 호수 물굽이 인가에서 보았더니마는

底事移來紙上看
무슨 일로 종이 위에 옮겨놓아 보게 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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