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멀리 김정희까지 소환해 너 문화재보호법 위반했지? 왜 진흥왕 순수비 옆구리에다가 네 이름 새겼느냐 물을 필요도 없다.
문화재 현장의 낙서? 쌔고 쌨다.
진흥왕 엄마 지몰시혜비가 두 번 행차한 흔적을 남겼다 해서 열라리 유명한 울주 천전리 각석.
그것이 발견되고 국보로 지정된 이후 못 같은 날카로운 도구로 긁어낸 이름 혹은 다른 낙서 천지다. 곰보다.
전국 문화재현장, 특히 건축문화재 현장 가서 살펴봐라. 낙서 천지다.
이 낙서들은 어찌할 것인가?
한데 우리가 낙서 또한 다른 각도에서 접근해야 한다. 그것이 그 시대의 고스라한 증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북한산 비봉 순수비를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은 실은 김정희 낙서다.
그 순수비 본래하는 비석은 지금은 용산 국립박물관에 가 있지만, 그 이후인지 아니면 그 전인지 확실치는 아니하나 그것이 본래 선 자리, 그러니깐 지금은 모조비가 선 자리 암반을 보면 곳곳에 낙서 천지다.
이 낙서는 제대로 탁본 조사를 내가 해 보지 아니했지만, 인명이 대부분이다. 간단히 말해 나 여기 왔다 간다는 표식이다.
반구대 암각화? 그 자체가 낙서일 수도 있다. 요새야 무슨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리기까지 하더라만, 근간은 낙서다.
오래된 석탑 몸돌을 보면 주로 조선 후기 흔적 같기는 한데, 낙서 천지다.
적어도 백년 이상 된 목조 건축물 비름빡을 보아도 낙서 천지다. 화엄사 무슨 건물이던가?
거기 보니 천지사방 몰려든 사람들 붓글씨 낙서 천지였다. 그 낙서 중 비교적 육안 판독이 용이한 것들을 보니 결국 나 언제 다녀간다는 내용이었거니와, 그런 낙서를 남긴 사람들 주소를 보니 놀랍게도 전국 팔도를 망라했다.
이 낙서들은 그 자체로 소중한 유산이다.
문화재보호법 도입은 그것이 없었던들 무수했을 낙서, 그리고 그것들이 함축했을 소중한 역사 증언들을 원천 봉쇄하는 역효과도 빚어내고 있다.
문화재로 지정되는 순간 그 어떤 낙서도 용납하지 아니하니, 그래서 문화재 지정이 유산의 박제화를 부른다는 말은 아주 정곡을 찌른다.
내가 매양 사례로 지적하듯이 김정희 세한도? 그 몸통은 쥐꼬리 만한데 그것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그에 덕지덕지 붙은 발문들이다. 당대 내로라 하는 사람들이 하나씩 붙여 나간 발문 길이가 아마 20미터가 넘을 것이다.
한데 그것이 국보가 되는 순간, 더는 낙서가 붙지 못한다. 그것이 문화재 훼손이라는 이유로 그 어떤 변형도 금지한다.
이 역설을 우리는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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