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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전문직으로서의 학예직, 그 이상야릇한 처지를 보며] (4) 그 복사판 전문기자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3. 1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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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기자를 지탱하는 오직 하나의 힘은 열정이다. 내가 그에 해당하는지 자신은 없으나 미쳤었다고는 해 둔다.

 
조금은 느닷없을 듯한 학예연구직 이야기를 연속으로 내가 쏟아낸 이유는 몇몇 분은 눈치챘을 법한데 실은 내 이야기인 까닭이다. 

학예연구직을 둘러싼 아주 똑같은 논란이 언론계에서는 실은 전문기자제를 둘러싼 그것이다.

이에 대해서도 아주 여러 번 이야기했듯이 전문기자제는 언론이 지향해야 하는 아주 바람직한 방향이라 해서 그 어떤 언론도 그리 나아가야 한다 주창하고 실제 그를 위한 움직임이 적지 않게 있었지만 내 보기엔 몇몇 기자 빼고선 종국엔 다 파국을 빚고 말았다.

현실과 이상은 다르기는 학예직제랑 전문기자제가 하등 다를 바 없다.

그나마 전문기자라 해서 그런 자리 지키는 경우는 한국언론에서는 오직 한 가지 경우밖에 없다.

보직 부장 혹은 그 이상을 하고 난 경우가 그나마 전문기자로 상대로 안착을 한다.

왜 그런가?

이건 내 선후배들이 그런 자리에 있는 일이 많아 무척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보직 부장을 하고 난 전문기자는 실은 퇴직 준비용인 까닭이다. 보직을 역임한 전문기자는 어느 누구도 경계하지 않는다.

후배도 선배도 자기 자리를 넘보지 않고 선배 기자가 전문기자로 빠져준다는데 마다할 리 있겠는가? 어쩌면 누이 좋고 매부 좋고다.

물론 그렇지 않다는 반박 나올 수 있고 그런 반박이 정당한 경우도 있다는 걸 잘 안다.

비근한 예로 나는 내 주변 문화재 전문기자들 종말을 정리한 적이 있다. 평기자부터 줄곧 문화재를 지킨 기자 중에 끝까지 간 경우는 단 한 명도 없고 다 아예 언론계 자체를 떠났다는 사실이 전문기자가 처한 냉혹한 현실을 웅변한다. 나는 느닷없이 쫓겨났다가 느닷없이 해고까지 됐다.

나 혼자만 그리됐다면야 내 문제만일 수 있지만, 누가 봐도 나보다 더 나은 실력, 더 나은 인격을 갖춘 동료 문화재 전문기자들이 다 그랬다면 이는 분명 시스템의 문제다. 

전문기자가 버티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무시와 질시, 그리고 무엇보다 존경 부족 때문이다. 무시 질시는 다 좋은데 전문기자들은 특히 존경 부족을 생득으로 증오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부장놈 국장놈이 얼토당토 않은 요구를 일삼고 얼토당토 않은 일로 질책하는 일을 생득으로 참지 못한다. 

뭐 말로야 합리적으로 잘 설명하면 된다지만, 부장 국장이 합리로 설득되는 일은 단군조선 이래 없다. 버릇이 없다느니 선배도 몰라본다느니, 전문기자 하면서 버릇만 나빠졌다느니 하는 얼토당토 안 되는 말만 늘어놓는다. 

그런가 하면 이 전문기자가 그네들한테는 얼마나 요긴한가 하면, 그와 관련하는 민원이 살면서 왜 없겠는가? 회사 차원이건 개인 차원이건 그와 관련되는 일만 생겼다 하면, 쪼르륵 달려와서 해결해 달라 한다. 

이 경우 불법 탈법이 아니라면 거개 전문기자들은 도와 준다. 한데 문제는 그런 민원이 불법 탈법 아닌 경우는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 이 경우가 실은 전문기자가 비전문 기자들과 가장 자주 충돌하는 지점이다.

이 이야기를 하자면 전직 직장 영업 비밀까지 폭로하는 일이 되므로 이 정도로 참기로 하고, 아무튼 그런 일이 빈발한다는 이야기만 해 둔다. 지들이 필요할 때는 갖은 알랑방귀 뀌다가 지들 요구를 들어주지 않거나 못 들어줄 때는 상황은 돌변한다. 

그래서 나는 전문기자를 꿈꾸는 후배기자들한테 대개 이런 식으로 말했다. 전문기자? 꿈도 꾸지 마라. 정 하고 싶으면 나중에 부장하고 나서 하라 고 말이다. 

내가 문화부장일 시절에는 전문기자로 통용하는 후배 부원을 다른 부서로 쫓아낸 일도 있다고 말해둔다. 이 때문에 그와는 아주 안 좋은 사이가 되고 말아 안타깝기 짝이 없지만, 내가 일부러 쫓아냈다는 이야기는 이제서야 이야기해 둔다. 

아무튼 저 학예직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속이 편할 리 있겠는가?

그것이 내 자화상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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