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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현장

아라가야 본고장 함안을 찾아서 (1) 성산산성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8.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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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에서 하룻밤 유숙하고는 열차로 함안으로 향했다. 불과 30분 거리. 내리니 온통 뿌였다. 남해안에서는 북쪽으로 좀 들어간 내륙 분지인 함안은 남쪽 함안면과 함안역, 그리고 함안읍을 차례로 정북쪽으로 관통하는 함안천이 생명줄이라. 이 함안천은 북쪽으로 냅다 흐르다 낙동강 지류 중에서는 가장 큰 축에 속하는 남강에 합류한다.  

함안역에 내려 남쪽 함안면 쪽을 바라다 본다. 그리 높다 할 순 없으나, 그렇다고 야산이라고는 할 수 없는 산들이 올망졸망 거대한 병풍을 이룬다. 


반대편으로 몸을 돌려 함안읍내 쪽을 바라본다. 

언뜻 봐도 목이다. 길목이다. 양쪽에서 툭 튀어나온 저 산능선 중앙을 관통해 곧장 나아가면 함안 읍내다. 저 골목을 함안천이 통과해 위쪽으로 흘러간다. 함안군 학예연구사 조신규 선생이 저 능선 중에서도 왼편을 가리키며 묻는다. 

"저기가 어딘 줄 아시겠어요?" 

글쎄 아리까리하다. 함안은 근 20년 만의 내방이라 아리까리할 수밖에. 그가 말을 잇는다. 

"저기가 성산산성입니다. 목간 많이 나온 성산산성...." 


저곳을 두어 번 올랐더랬다. 그때는 이렇게 성산산성 입지 조건이 이렇게 확연히 와닿지는 않았다. 예서 보니 왜 저기에다가 신라가 성산산성을 쌓았는지 비로소 확연히 드러난다. 길목을 지킨 것이다. 이곳이 바로 교통로인 까닭이다. 함안 읍내에서 이곳 기차역을 지나 함안면으로 나아가는 길목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이어지는 길을 따라 곧장 남쪽으로 가면, 마산으로 향한다. 간단히 말해 경부고속도로 추풍령휴게소다. 저런 길목을 아니 지킬 수 있겠는가? 

조 선생은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한다. 

"저 성산산성을 경계로 해서, 저 안쪽 읍내 쪽이 아라가야 중심지입니다. 읍내에선 이렇다 할 신라 흔적이 없습니다. 가야 유적만 나와요. 신라는 (남쪽) 함안면 쪽에서만 잔뜩 나오지요. 성산산성을 경계로 삼아 그 남쪽 함안면에서만 나와요."

다음 지도를 보면 성산산성이 차지하는 막중한 위치가 드러난다. 


이를 존중한다면 신라는 지금의 함안 읍내가 중심이던 아라가야를 합병하면서, 그 일대는 초토화하는 대신, 그 통치 거점을 지금의 함안면으로 옮긴 셈이 된다. 성산산성은 아라가야 병합 직후 그 지역 지배 거점을 더욱 공고화할 목적으로 쌓았으리라. 그것을 지도로 대강 표시하면 다음과 얼추 비슷해 지리라. 


성산산성을 통과해 함안 읍내로 들어서면 드넓은 평야가 펼쳐진다. 그 왼편 능선이 길게 발달됐으니, 그 능선 정상부를 중심으로 경주 지역 신라 고분과 같은 거대 고분 봉분이 줄지어 나타난다. 말이산 고분군이다. 아라가야 시대 왕릉급 고분으로 추정하는 곳이다. 우선 그 위치를 지도를 통해 성산산성과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차를 세우고 말이산 고분군 전경을 담아본다. 


유독 저 한복판을 차지한 봉분이 규모가 크다. 위치로 보아 오야붕 자리다. 저 오야붕 무덤을 파고 있다. 내가 함안을 다시 찾은 이유가 저 무덤 발굴현장을 둘러보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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