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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측을 하려면 그 중심점이 되는 나무 말뚝을 박아야 합니다. 가장 높은 곳에서 사방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에 설치해야 하니, 당연히 봉분 제일 높은 곳에다가 말뚝을 박지요. 나중에야 그 이유를 알았지만, 당시 발굴단에선 아무도 말뚝을 박으려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제가 했지요. 왜 남들은 나서지 않았는가? 무덤에다 말뚝 박으면 부정 탄다 해서 아무도 나서지 않았던 것입니다. 저야 그런 사정을 알 턱이 없었지요.”
김태식, 「한국고고학 최초의 실측가 남시진」, 연합뉴스, 2006. 6. 22
누가 무덤에다가 말뚝 박는 일을 좋아하겠는가? 그래서 아무도 안 한다고 나 자빠졌다.
이럴 때 총대는 항상 막내가 매기 마련이라, 막 공고 졸업하고서는 당시 한국일보 주재 우병익 기자 백, 곧 낙하산으로 경주고전발굴조사단에 합류한 남시진이 기술도 있고 해서 봉분으로 기어 올라가서는 말뚝을 박았다.
물론 저때는 천마총이 155호분이라 일컫던 시대라, 나중에 발굴조사를 완료하고서는 그 출토 유물 중에서는 천마도 장니가 유명하다 해서 저런 이름을 얻었다.
금관이 압도적이라, 금관총이라 불러야했겠지만, 이미 그 이름은 일제시대 다른 무덤이 가져가 버린 상태라, 장니를 택해 마스코트를 삼는다.
문제의 기사 전문은 아래 첨부를 참조하라
<사람들> 한국고고학 최초 실측가 남시진
송고시간 2008-06-22 09:30
https://www.yna.co.kr/view/AKR2008062019550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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