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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

광주풍납리토성에 얽힌 일화 한 토막

by taeshik.kim 2023. 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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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신동아》 2000년 7월호에는 내가 기고한 <‘한국판 폼페이’ 풍납토성의 감춰진 진실>이 실렸다.

그 첫 대목에는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 편찬 준비 8년, 출판 작업 4년 만에 만들어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본책 25권, 부록 3권)에 ‘풍납토성’이 표제 항목으로 없다는 논급이 있었다.

하지만 이는 내 오류였다.

 

풍납토성. 문화재 지정 당시 공식 명칭은 광주풍납리토성이었다.



당시 연합뉴스 자료실에는 이 백과사전 전질이 있었으니, 이를 수시로 내가 들여다보았지만 놓치고 말았다.

이에는 나름 곡절도 없지 않아, 표제 항목을 '광주풍납리토성'(맞나?)이라고 수록했기 때문이었다.

이 사전은 표제항목 선정에 기준이 있어 문화재의 경우 그 등재 표제어를 기준으로 삼아 이렇게 편성했다.

풍납토성은 처음 사적 지정 당시에 경기도 광주군 소재라 이렇게 되고는 행정 구역이 서울 송파로 재편되었음에도 여전히 이리 항목 설정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나중에 확인해 보니 이 광주풍납리토성은 집필자가 최몽룡이었다. 그 황당함이란...

이 신동아 기사에 가장 발끈한 이가 있었다. 김창겸이었다.

내 김천고 10년 직속 선배. 이를 본 형이 노발대발했다.

나도 하도 화딱지가 나서 내가 그랬다.

"댄장, 그러니 사전을 왜 그 따우로 만드냐구요"

이미 인쇄까지 된 마당에 어찌할 수 없어 책으로 낼 때 교정을 약속했다.

하긴 형은 이 백과사전에 청춘을 다 받친 사람이다. 이를 전담하다 보니 일찌감치 애늙은이가 되고 말았다.

맨날 영감들 불러다가 원고비 농가주다 그 늙은이가 되고 말았다.

(2017. 3. 31)

 

풍납토성 삼표레미콘 부지 일대




당시 이에 창겸 형이 아래 같은 댓글을 붙였으니 참고할 대목이 적지 않다.

내 나이  20대 말. 그러니까 1980년대 초중반에  김원룡 한병삼 임병태 한영희 정영화 김철준 선생님 모시고 당시 최신의 책과 논문 제목과 주제 이야기하면서 이것저것 표제어 항목은 누구는 원고를 쓸 수 있고, 누구는 아직 수준 미달이라는 삼불과 일계 선생님의 이야기 들으면서 귀동냥  공부하고.

80년대 후반에는 이기동 최병헌 신형식 김두진 그리고 강인구 지건길 선생도 참여하시고 식사와 술 마시며 뒤담화 듣고 했으니 당시 고고학 고대사 분야 박사논문 심사와 교수 채용과 이동 소식은 내가 진짜 빨리 알았지요.

그리고 고고학.고대사학계 각 개인 교수들의 연구 수준과 성실성 인간관계 등등 비화도.

그래서 문화재청에 명칭 개정 제안을 했지요. 그런데 당시 대답은 명칭이 잘못된 것은 인정하나 행정지명 변경을 따라가면서 문화재지정명칭을 수시로 변경하기는 어렵다고. 너무 방대한 작업이라 당장은 그 일을 할 인력이 없다고...고충 하소연했습니다.

그리하여 내가 대안으로 낸 안이 발굴보고서에 사용한 명칭과 소재지의 광역 시도를 달리하는 경우는 독자의 편의를 위해 실제 소제지 명칭으로 공항목를 설정했습니다.

유물 명칭은 내가 삼불 선생이랑 합의해서 전부 한글화했지요. 그러니까 최몽룡 선생이 삼불이 동의했다는 내  말을 듣고는 국정교과서를 집필하면서 한글화하고 부록으로 용어 대조표를 붙히는 급진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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