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컬처기획단장으로서 지난 3년간 일하면서 새로 시도한 일이 두어 가지인데 개중 하나가 아카데미였다. 작년 7월에 여행자학교라는 이름으로 시작해 2기까지 돌렸고, 현재 여행자학교 3기가 초반기를 지나는 중이다.
여행자학교 2기에는 좀 욕심을 내서 하나 더 만들자 해서 사진과 미술을 특화한 강좌를 하나 더 만들었으니 처음에는 사진과 미술이라 했다가 이름을 중반에 광화문사진관으로 고쳤다.
각 강좌는 1기의 경우 14강(매주 1회)으로 했다가 나중에 12강으로 줄여 그것으로 정착한 흐름이 아닌가 하지만, 아예 더 줄여서 한달 단기강좌도 구상하기도 했다.
수강료에 다들 민감한 편인데, 60만원을 책정했다가 나중에는 100만원으로 올려봤지만 여의치 아니해서 60만원으로 도돌이했다.
수강 인원은 50명으로 제한을 걸었다.
나로서는, 그리고 공장에서도 그렇지만 아카데미는 난생 처음으로 적지 않은 우여곡절이 있었으니 이상과 현실은 달라 무엇보다 모집에 애를 먹어 2기의 경우 사돈의 팔촌까지 등록해달라 읍소하는 촌극이 빚어지기도 했다.
짧은 기간 내가 이를 시도하며 느낀 바가 한둘이리오마는 이제 그것을 놓는 마당에 그 짧은 경험 일단을 초해두고자 한다.
아카데미는 무엇보다 공짜, 그리고 등산과의 싸움이더라.
이 사회에는 무수한 아카데미가 존재하며, 지금 이 시간에도 무슨 아카데미를 개설한다며, 그 모집을 홍보 독려하는 광고들을 본다. 조금 전에도 어느 박물관 보도자료를 열었더니, 아카데미를 개설한댄다.
이 아카데미 개설을 주도하는 데는 그 기관 성격에 따라 관공서 혹은 그런 성격이 짙은 기관, 평생교육원이니 하는 대학 관련 부설기관, 백화점 등등이 있으니, 이 중에서 대학 기관들 말고는 모조리 공짜 혹은 공짜에 가깝다. 유료라 해도 생색내기용에 지나지 아니해서 10만원 안쪽이 많다.
학기당 60만원을 받는 우리는 이들 공짜와의 쟁투를 벌여야 했다.
힘이 가장 많이 빠지는 때가 모집을 독려 읍소하는 말에 "다들 공짜로 하는데 그런 데 누가 가요?" 하는 반론이었다. 힘이 죽죽 빠졌다.
또한 등산과 쟁투를 벌여야 했다. 밖으로 나돌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고, 그들은 진득이 강좌당 2시간을 앉아 강의를 듣는 일을 선호하지는 않는다. 그런 강좌가 있다 해도 현장성이 있어야 한다.
이것도 처음에는 버벅대다가 나중에 하다 보니 여러 요령이 생겨 이런저런 특별프로그램을 통해 등산으로 밖으로 나가려는 사람들을 묶어두고자 했다.
비록 짧은 기간이나마, 이런 경험을 통해 나 개인으로서도 망외의 소득이 없지는 않았다. 공짜 그리고 등산과의 쟁투를 어찌 벌여야 하는지에 대한 아주 쥐꼬리 만한 요령을 터득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교육은 마르지 않는 샘이라 하지만, 그 마르지 않는 샘이라는 특성이 아카데미를 더욱 힘들게 한다. 너도나도 아카데미를 하지 않는 데가 없다. 작은 단체 혹은 모임도 아카데미라는 이름을 쓰지는 않지만 실상 아카데미 과정에 가까운 각종 답사 프로그램을 공짜 혹은 공짜에 가깝게 돌린다.
아카데미 또 하나의 적은 사심이더라. 이 아카데미는 시작과 더불어 이미 이런 자리를 빌려 사욕을 채우려는 움직임이 이래저래 감지되기도 했다.
실은 이 사욕이 아카데미를 밀어부친 나와 우리 단원들을 가장 힘들게, 그리고 맥빠지게 했다.
우리는 수강생 채우지 못해 발을 동동거리는데, 격려 한 마디는커녕 지 뱃속만 채우려는 움직임에는 정말로 환멸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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