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구 안국동과 가회동 경계를 이루는 윤보선가尹潽善家 전면 한옥채들이다.
첫 사진 뒤쪽 철근콘크리트 건물이 헌법재판소라 저 언저리가 연암 박지원 손자 박규수가 살던 집이다.
현재 보는 건물들이야 지붕 담장 쏵 개비했지만 저 면모가 조선후기 그 면모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보아 대과가 없다.
윤보선가야 말할 것도 없다.
이 일대는 창덕궁과 경복궁에 낀 지점이고 무엇보다 북악 언저리라 언덕배기라 홍수에 따른 침수 우려가 거의 없는 지역이며 무엇보다 겨울이면 매서운 바람 휘몰아치는 광화문 일대와는 달랐으니
그런 까닭에 날고 긴다는 사람들만 사는 부촌이었다.
저거 발굴해 보나마나 저 골목길 건물 구조 마당 등등 고스란히 지금 모습이 조선시대, 특히 조선후기 그대로다.
조선시대 날고긴다는 사람들이 산 기와집은 예외없이 평면이 저러해서 ㅁ자형을 보이는데 그래서 마당은 코딱지 만하고 언제나 그 마당은 빛이 드는 일이 드물어 음습했다.
저런 구조야 말할 것도 없이 높은 인구밀도에서 비롯하니 사람은 많은데 살 만한 공간이 부족하니 재간이 있겠는가?
그때는 아파트가 없어 다 단층 구조였으니 복층이라 해 봐야 우리가 생각하는 연립주택이나 아파트와는 달리 1층에서만 생활했다.
이는 역설적으로 왜 아파트가 혁명인지를 말해준다.
옆으로만 퍼지는 가로 지향 ㅁ자형 한옥이 비로소 아파트를 통해 수직으로 생활공간을 확대했으니 이는 비약적이 토지이용율 상승을 불러왔다.
저 ㅁ자형 평면은 실은 궁궐 건축의 미니어처라 다만 궁궐은 사정이 달라 대지 면적이 엄청나게 크다는 이점이 있다.
지방에 산재하는 사대부가들도 보면 예외없이 저 구조인데 이게 장점이 나름대로 있어 그 건물들 외벽이 실은 담장 구실을 하기도 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다만 지방의 경우 대지가 상대적으로 넓어 별도 담장을 외곽으로 두르는 일이 많은데 이것이 바로 나성이며 궁벽의 미니어처다.
담장은 너와 나를 가르는 심리적 마지노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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