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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너무 잘난 형을 둔 흠순欽純 (5) 미스터리 국정자문위원 렴장廉長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3.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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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흠순 형제가 한창 주가를 날리던 시대, 신라에서 돈과 권력으로 정계를 주무른 이로 렴장廉長이란 사람이 있다. 하지만 염장은 미스터리다. 그건 다른 무엇보다 꼴랑 한 군데 고개를 내밀고는 사라지고 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꼴랑 한 번 고개를 들이민 사람이 대단했을 것임을 우리는 어찌 아는가? 이를 위해 위선 우리는 그 꼴랑 한 번하는 장면을 음미해야 한다. 

《삼국유사》 기이편紀異篇 진덕왕眞德王 이라는 제하 이야기에 보이는 대목이다.   

 
“(진덕여)왕이 즉위한 시대에 알천공閼川公·림종공林宗公·술종공述宗公·호림공虎林公(자장慈藏의 아버지다)·렴장공廉長公·유신공庾信公이 있었다. 이들은 남산南山 우지암亏知巖에 모여 나랏일을 의논했다.”

간단히 말해 왕은 꿔다논 보릿자루였고, 실제는 이들 여섯 분이서 나라일을 잡솨드셨다는 말이다. 그 집단지도체제 정사당이 남산에 있었고 그 이름을 우지암亏知巖이라 했다는 말이다. 혹 우지암은 지명일 수도 있다.


스타벅스 커피 한 잔씩 때리며 김유신까라 일곱 혹은 여섯 뇐네는 국사를 농단했다.



바위 암자를 썼으므로, 이를 액면 그대로 본다면, 이런 바위에 빙둘러 걸터 앉아서는 황리단길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씩 배달시켜서는 빨대로 쭉쭉 빨며 국사를 논의했다는 말이다.

예서 키포인트는 빨대 바닥을 긁을 때 나는 그 소리. 아, 동네 티켓다방 오토바이 배달이었을 수도 있다. 아무래도 연세 자신 양반들이라 프림 설탕 듬뿍 들어간 다방커피를 선호하셨을 테니 말이다. 

이어지는 묘사.  

“이때 큰 호랑이 한 마리가 좌중에 뛰어드니 여러 사람이 놀라 벌떡 일어났지만 알천공만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태연히 담소하면서 호랑이 꼬리를 잡고는 땅에 메쳐 죽였다. 알천공은 완력이 이처럼 세서 그를 윗자리에 앉혔다. 하지만 모든 이는 유신공의 위엄에 심복했다.”

뭐 빤하잖아? 이 모임을 실제로 주도하는 인물이 누구라는 사실은? 알천은 나이가 많다 해서 얼굴마담으로 앉혀놨을 뿐이니, 그는 진덕여왕이나 마찬가지로 또 다른 보릿자루였다.

실제는 김유신 혼자서 다 말아드셨다. 이 집단지도체제는 허울뿐이요, 실제는 김유신이 꾸린 국정자문기구 혹은 원로원 회의에 지나지 않았다. 

이미 이 시대는 김유신의 시대였다. 낭비대첩을 통해 화려하게 등장한 김유신은 선덕여왕 시대가 되자, 혁혁한 군사 성공을 발판으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언터처블 넘버원으로 올라섰다가, 그 말년 또 다른 여왕 등장에 반발한 비담과 염종이 반란을 일으키자 이를 일망타진함으로써 비상계엄군 사령관이 되어 국사를 쪼물탕쪼물탕한다. 

한데 그렇게 김유신이 꾸린 국정자문 원로원 회의에 염장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저와 비슷한 논급이 《화랑세기》 14세 호림공虎林公 전에도 보이는데, 다만 그 구성원에 김유신에 뒤이어 16세 풍월주가 된 보종宝宗이 추가되어 7명이 된다는  점이 다르다. 이들 일곱을 북두칠성에 빗대어 칠성우七星友라 했다고 한다. 

이를 따른다면 내가 이미 지적했듯이 이 칠성우는 김유신이 거느린 칠성파였고, 유신은 그 두목이었다. 


21세기 우지암은 커피숍 아니겠는가?



김유신이 명실상부한 두목 타이틀을 차지하지 않고, 알천을 내세운 이유는 간단하다. 유신 자신이 어렸기 때문이다. 얼마나? 젤로 어렸다. 물론 그렇다 해도 647년 진덕왕 즉위 당시 김유신은 이미 쉰셋으로 만만치 않은 나이였다. Old enough!

그렇다면 염장은 과연 어떠한 배경으로 저 자문회의에 이름을 올렸던가? 

또 그런 그가 어찌하여 김흠순과 코가 꿰는가?

아, 그러고 보니 김흠순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번 시리즈에서 흠순이라는 이름이 아예 거명조차 하지 않았으니 이렇게라도 미안해서 억지로라도 불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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