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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적 지식인"은 없다. "입맛에 맞는 지식인"이 있을 뿐.
일본이나 미국 같은 데서 활동 중인 지식인으로 흔히 '진보'로 분류되어 그 사회 내부를 향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이들을 대한민국 사회, 특히 일부 지식인 그룹과 언론에서 "양심적"이라는 딱지를 붙이지만, 개소리다.
그들을 환호하는 까닭은 대체로 그 목소리가 우리가 원하는 목소리이거나 그에 가깝기 때문이다.
우리가 원하는 목소리, 우리가 듣고 싶어하는 이 목소리야말로 아첨이다.
이들에게선 그 사회가 안 보인다.
예컨대 이른바 비양심적이며 이른바 보수적인 일본의 소리.
그것을 인내하는 마음이 아니라 동조하는 마음으로 읽을 때 비로소 나는 일본이 보인다고 본다.
노엄 촘스키 Noam Chomsky...이 땅의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정말로 갈채하는 미국 지식인. 촘스키야말로 철두철미한 아메리카니즘 신봉자다.
또 다른 갈채의 유발자 에릭 홉스봄 Eric Hobsbaum..내가 아무리 읽어도 이 양반 브리티시 민족주의자다. (2011.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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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 목록에 언제나 콧수염 와다 하루키가 오른다.
그는 양심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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