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2011년 11월 23일 내 글이다. 글쓰기, 특히 논문 쓰기에서 첫 문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기 위함이며, 국내 내 직업적 학문종사자 글쓰기가 왜 하나같이 개판인가를 보여주고자 함이었다.
예서 예화로 거론된 이들한테는 미안하나, 재수없게 걸려들었을 뿐이지만 부당한 지적은 아니다.
****
엉망진창 글쓰기, 그 또 다른 보기 - 《정신문화연구》 124호의 경우
논문 서두가 왜 중요한지, 그것에 실패한 보기들로써 이 잡지에 실린 논문 첫 대목을 가려 뽑고 그것을 간평했다.
출전 :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신문화연구》 통권 제124호(34-3), 2011.09.10
임치균, <용궁부연록>의 환상 체험 연구
“김시습의 금오신화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더 이상 언급할 내용이 없을 정도이다. 그런데도 여기에서 다시 다루려고 하는 것은 금오신화 전체의 주지를 하나로 볼 수 없을까 해서이다.”
간평 : “더 이상 언급할 내용이 없을 정도”면 언급하지 않는 게 좋다.
전경목, 한글편지를 통해 본 조선후기 과거제 운용의 한 단면
“이 글에서 필자는 이른바 ‘진성이씨 이동표가 언간’이라고 알려진 한글간찰 몇 점을 통해서 조선후기 과거제 운용상의 한 단면을 살펴보고 아울러 조선시대인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과거의 의미가 어떠했는지를 알아보려고 한다.”
간평 : 국문초록 첫 문장 같다.
구난희, 新명문고 열풍으로 본 한국 교육 경쟁의 구조와 특징
“한국의 높은 교육열은 한국사회가 겪은 급격한 사회 변동에 적응하는 동시에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나가는 주요한 에너지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과다한 교육열이 과잉 경쟁과 사회적 불화감을 조성한다는 비판의견 또한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간평 : 하나마나 한 말이다.
김철주·고병철, 한국 종립 대안학교의 종교교육과 대안성
“비교적 최근에 홈스쿨링에 관한 언론 보도를 자주 접하게 된다. 개신교계에서는 한국기독교홈스쿨협회를 중심으로 홈스쿨링운동을 전개하기도 한다.”
간평 : 이 또한 하나마나 한 말이다.
유진월,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주체의 구현
“인류의 문화 창조 과정에는 늘 여성의 몸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어왔고, 그 결과물 중에는 지금까지도 예술적 성취를 평가받는 수많은 작품이 있다.”
간평 : 도대체 무엇을 이야기하려는지 감조차 주지 않는다. “욕구가 있어왔다고?” “욕구가 있었다”거나 “있었고 지금도 있다”는 식으로 바꿔야 한다.
김지영, 식민지 대중문화와 '청춘' 표상
“청년, 청춘이란 젊음을 의미하는 서로 다른 표현이다. 활달한 신체적 역능과 왕성한 심리, 정서적 활동과 변이를 동반하는 젊음의 주기가 ‘청년’이라는 기호로 호명되기 시작한 것은 근대의 일이다.”
간평 : 두 번째 문장을 차라리 서두로 올려야 한다. 첫 문장이 저렇게 시작하면 하품부터 나온다.
김태환, 퇴계의 산수 음영과 자연미 인식의 양상
“퇴계(退溪)의 산수시(山水詩) 작품에 관한 기존의 연구는 대체로 성리학 사상의 반영을 예견하는 관점에서 출발한 것이 많았다.”
간평 : 기존 연구성과부터 비판하고 들어가니 이건 순전히 동업자를 독자로 겨냥한 이야기 방식이다.
채숙희, 목적의 '-겠다고'에 대하여
“형태상으로 보았을 때 ‘겠다고’는 간접인용구문에서 ‘겠다’로 끝나는 피인용문에 인용표지 ‘고’가 결합한 형태이나, 이유를 나타내는 연결어미 ‘다고’에 ‘의도, 추측’ 등을 나타내는 선어말어미 ‘겠’이결합한 형태로 분석할 수 있다.”
간평 : 이건 너무 앞서나갔다. 마른 하늘 날벼락 같다.
김순배, 언어적 변천에 따른 지명 유형과 문화정치적 의의
“지리적이고 문화적인 속성을 지닌 지명(place names)은 동시에 그 생성과 변천 면에서 언어적 현상과 특성을 자생적으로 간직한 문자 내지는 음성 상태의 언어이기도 하다.”
간평 : 개인적으로 나는 용어 정의부터 시작하는 글 결말 좋은 거 못봤다.
김지영, 조선시대 왕실 여성의 출산력
“1970년대 이래로 서구사회에서는 여성주의자들을 중심으로 여성의 출산문제에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면서 보편적인 생물학적 기능으로 간주해온 여성의 출산능력이 실제 출산행위로 실천되는 과정은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관계들이 개입하는 정치적 장임을 논의해왔다.”
간평 : 앞 글과 같다. 기존 연구성과부터 비판하고 들어가니 이건 순전히 동업자를 독자로 겨냥한 이야기 방식이다.
정준영,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스포츠 열풍과 한국사회
“2010년 초 밴쿠버에서 열린 제21회 동계 올림픽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는 김연아라는 새로운 스포츠 영웅이 탄생했다.”
간평 : 그나마 이번 호 수록 논문 중 서두가 제일 낫다. 하지만 하나마나 한 느낌도 준다.
'ESSAYS & MISCELLANI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씨姓氏, 본인 의지나 선택은 배제된 지들만의 혈통 리그 (1) | 2022.04.28 |
---|---|
진동하는 라일락이 실어가는 또 하나의 봄 (1) | 2022.04.16 |
윤석열이 없는 노무현과 이명박의 용병술 (0) | 2022.04.14 |
기조강연, 종합토론 사회는 꺼지라는 신호다 (1) | 2022.04.13 |
경복궁 한복, 안동 우와기 (1) | 2022.04.1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