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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한국의 그림을 남긴 엘리저베쓰 키쓰 Elizabeth Keith(1887~1956)의 그림은
아무리 봐도 우키요에인데
이 부분 설명이 한국에 소개될 때 자세하지 않은 것 같다.
키쓰에 대해 소개한 영문 포스팅을 보면
대부분 이 분은 우키요에 기법을 받아들여 목판을 많이 제작했다고 한다.
지금 키쓰 그림이라고 국내에 소개된 그림들은 상당수가 필자가 보기엔
그냥 수채화가 아니라 우키요에다.
이 그림들이 단순히 그림이라고 소개 해 버리면 이를 이해하는 수준의 디테일이 팍 떨어진다.
이 그림들을 우키요에라고 보면, 그제야 왜 이 그림이 그렇게 익숙하게 느껴졌는지 이유를 알게 된다.
참고로 일제시대에 만든 우키요에 중에는
조선을 배경으로 한 것이 키쓰의 것 외에도 좀 있다.
그렇다면 키쓰의 그림 (우키요에)을 과연 특별 대접 해주는 것이 옳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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