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대학생 초년병이던 대학 예과시절 이것저것 잡다한 책을 읽었는데
그 중 즐겨보던 책 중에 고고학 책도 꽤 있었다.
그 중에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엘만 서비스 Elman Service (1915~1996) 라는 미국 고고학자 주장을 인용한 모 교수님 글이었는데
워낙 유명한 인용이라 뭐 이쪽 전공자 분은 다들 아시리라 생각한다.
당시가 80년대 중반이니 아마 그 교수님도 당시 40초반 소장학자였으리라.
거두절미하고 생각해 보면 당시로서는 참신한 이야기이고
생각해 볼 만한 부분이 많은데
문제는 이 이야기가 아직도 유령처럼 한국에서 떠도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 이론은 내가 알기론 북미 원주민을 대상으로 연구한 미국 인류학자들의 국가형성이론으로
사실 이게 맞는지 틀리는지는 아무도 모르며
이걸 80년대도 아니고 지금도 한국사에 그대로 갖다 적용해서 되겠는가 하는 생각도 들더란 말이다.
필자는,
해외 이론을 한국 연구에 외삽하는 형식의 시도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처음에는 좀 폼이 나고 쉬워 보일지 모르지만
그렇게 해서 사실 거기서 뭐 대단한 이론이 나오는 걸 못봤다.
이런 해외 이론의 외삽은 어디까지나 문제제기 수준에 그쳐야지
여기에 지나치게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이건 일본 이론을 무비판적으로 가져다가 한국에다가 그대로 적용하는 시도들도 마찬가지다.
위에 엘만 서비스 비스무리한 것으로
이쪽에는 "화장실 고고학"이 있다.
그런 거는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필자는 십년 넘게 떠든 것 같은데
아직도 버젓이 화장실 고고학이라는 명칭이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필자가 이해하는 바 화장실 고고학이라는 명칭은
아마도 그쪽에서 대중의 관심이라도 끌겸 겸사겸사 조금 자극적인 명칭을 붙인 것이 지금까지 내려오는 것 같은데
이거야 그쪽은 그렇다고 쳐도 여기서도 수십년간 그대로 명칭을 답습하여
이걸 무슨 대단한 과학적 분석인양 이야기가 반복된다는 것 자체가 실망스럽다.
생각하지 않고 살면,
물론 쉽고 편하겠지만
그렇게 해서는 또 발전이 없다.
자기 스토리를 가져야 하는 건
개인 연구자에게만 요구되는 덕목은 아니고
한 나라의 학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나라 학계도 자기 스토리가 있어야지
언제까지 남의 이론 가져다가 적용하며 위안을 삼을 수는 없다는 말이다.
학계라는 것이 아주 간단해서,
스토리가 있는 자가 없는 자를 지배하게 되어 있다.
우리 학계는 얼마나 우리 스토리가 있는 것인지 한 번은 생각해 볼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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