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50년대 이후의 호적을 보면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호적에는 유학幼學이 바글바글하며
유학이 이렇게 들끓는 시대에도
직역이 한량閑良으로 적힌 이들이 있다.
왜 이전에 유학 아래의 주호를 알리던 업무業武, 업유業儒 대신
한량이라는 직역이 이렇게 많이 쓰이게 되었는가 생각해 보면
18세기에 이 직역이 주로 서얼들에게 많이 쓴 직역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지만
심증이라 자신은 없다.
아무튼 19세기 후반에는 업무業武나 업유業儒 대신 한량도 상당히 많은데,
이 한량 직역을 쓴 사람들 보면,
본인과 처의 부, 조부, 증조부, 외조부 양쪽 4분, 도합 8분의 성함을 적는 난에
부지不知, 모른다 라고 당당히 적어 놓고는
끝에는 다시 확인할 겸 양쪽 부, 조부, 증조부, 외조부 8인 이름 모름이라
한자로 떡 호적에다 써 놓은 경우가 보인다.
이런 사람들은 불과 몇 십 년 전 만 해도
호적에 절대로 한량 직역을 받을 수가 없는 사람일진대,
조부, 증조부 이름을 모르는건 그렇다고 쳐도
아버지 이름도 모른다고 적어 놓은 것을 보면
글을 모르는 것도 모르는 것이지만
정말 아버지 이름을 모르는 듯하여
아마 노비에서 풀려난지 얼마 안 되는 사람이라 짐작해 본다.
이런 사람들이 한 마을에 서넛은 있다.
호적을 적는 이도, 한량이라고 적어 놓고는
아버지 이름도 모름이라고 호적에다 뻔뻔하게 적어 놓은 걸 보면,
이 당시 한량이라는 직역의 이름값을 알겠다.
한량이 이 모양이니 유학도 뭐 비슷했을 것이로되
그렇게 쳐도 매우 이상한 구석이 또 있는데,
그것은 다음 회를 빌어 설명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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